(오공 쇼크)③김정태 "IP 문해력이 한국 콘솔 성공 좌우"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 인터뷰
"오공, '서유기' 심오한 재해석 성공"
게임, 콘텐츠 수출 70% 차지
"규모 걸맞은 진흥기관 설립을"

입력 : 2024-09-27 오전 6:00:34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요즘 강의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콘솔·PC 패키지 게임 개발력이 낮다고 여긴 중국에서 '검은 신화: 오공'이 나온 뒤로, 제자들의 역량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23일 용산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오공에 대해 "한국 게임인지, 미국이나 일본 작품인지 구분 못 할 정도로 중국의 기술력이 굉장히 높아졌다"며 "앞으로 중국 게이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게임은 고전하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오공 성공 비결은 '서유기' 문해력
 
그저 여느 교수의 흔한 제자 걱정으로 치부하기엔 김 교수의 이력이 눈에 띕니다. 김 교수는 1995~1999년 삼성전자 소프트사업팀에서 게임 제작·유통을 담당했고, 이후 <게임조선> 초대 편집장과 지스타 조직위 총괄부장 등을 지내며 한국 패키지 게임의 흥망을 지켜봤습니다. 게임업계를 두루 겪은 베테랑인 그는 한국 콘솔 게임의 미래를 담보하려면 개발자의 문해력 향상과 대학 교육 정비, 독립된 행정 기관 설립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오공의 성공은 개발자들의 깊은 문해력 덕분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입니다. 대작 게임의 기본은 인물 간 대화에서 전투에 이르는 각종 상호작용의 재미인데요. 주인공이 쓰는 기술과 아이템 외에 임무를 뒷받침할 서사의 매력도 필수입니다.
 
그런데 오공을 만든 '게임 사이언스'는 자국 고전 소설 '서유기'를 반영·재해석하는 데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입니다.
 
김 교수는 "아무리 멋진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이 있어도 게임이 재미없으면 외면받는 게 현실인데, 오공은 그 둘을 절묘하게 섞어내 의미가 크다"며 "오공 제작진은 아이템 하나하나를 풀 3D로 만들어 360도 회전하며 볼 수 있게 하고, 원전 서유기를 고증·재현한 설명을 넣는 배려까지 했는데, 이런 심오한 맛을 내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인기 있는 IP도 제작진의 깊은 문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일례로 프랑스 유비소프트의 2023년 작 '아바타: 프론티어 오브 판도라'는 전형적인 양산형 게임에 아바타 껍질을 씌웠다는 평가로 고전했습니다. 국내에선 올해 YJM게임즈가 배급한 온라인 소울라이크 게임 '킹덤: 왕가의 피'가 부실한 서사와 게임성으로 혹평받았습니다.
 
손오공의 영혼을 찾으러 떠난 천명자가 분신술을 쓰고 있다. (이미지='검은 신화: 오공' 웹사이트)
 
"인재 양성·R&D 투자를"
 
그렇다면 시나리오와 상호작용의 결합을 제대로 해낼 콘솔 게임 개발자를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요. 김 교수는 "게임 진흥 전문 기관 설립과 적극적인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음악과 출판, 영화, 웹툰 등을 합쳐 n분의 1로 게임 예산을 할당하지 않느냐"며 "게임이 콘텐츠 수출의 약 70%(2022년 기준 67.8%)를 차지하는데, 예산도 그 정도는 써서 R&D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콘솔 게임 진흥 예산도 개발비 지원보다는 연구와 교육에 집중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중소 게임사와 대학의 석·박사 인력에 대해 장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에선 학부 때 한두 학기는 콘솔 플랫폼사나 관련 게임사의 인턴을 시켜주고, 대학원생은 6개월에서 1년씩 상주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이런 인적·기술적 교류를 하는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국내에선 서울의 몇몇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SDK(개발 도구)를 받아 연구하는 사례가 있지만, 활성화되진 않았다는 게 김 교수 설명입니다.
 
특히 내실 있는 석·박사 양성이 시급하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몇 해 전엔 정부의 게임 전문 인력 양성 과제들이 있었지만, 이젠 메타버스 인력 양성 사업으로 바뀌었는데 이걸 콘솔 게임에 넣을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업의 맹점도 짚었습니다. 주요 대학에서 게임과 관련 없는 학과들이 사업을 가져가다보니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정부는 부실한 결과를 토대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김 교수는 "정부가 세운 게임인재원은 게임학과를 가진 기존 대학의 또 다른 경쟁 기관이 돼 버렸다"며 "차라리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우수 인재 양성 과정을 만들거나 주요 대학들이 파격적인 교과 개편과 교수진 확보 등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임사들도 진흥·연구 기관에 일정한 기여를 해야 하는데, '셧다운제' 같은 악법이 발의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는 성공 사례가 될 것"이라며 "민간이 먼저 진흥 기관을 이끌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역발상을 펴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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