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에서 보수적인 자본관리를 바탕으로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위험가중자산을 특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선언하면서 비은행 인수합병(M&A) 결정을 회피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보험사 등 2금융사의 잠재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에서 매각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공격적 M&A 후순위로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들의 성장 전략이 당분간 위험자산 관리에 집중되며 비은행 M&A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간 비은행 분야 사업 진출 확대를 노리는 금융지주는 M&A 시장 큰 손으로 꼽혔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3분기 실적발표를 끝으로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13% 수준으로 관리하고, 13%를 넘는 잉여 자본은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에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보통주자본비율은 금융지주의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응할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금융지주는 이 비율이 일정 수준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 규모를 결정합니다.
금융지주가 자본관리에 집중한다면 M&A는 경영 전략에서 뒤로 밀려날 가능성이 큽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며 총주주환원율 확대를 위해 보통주자본비율 관리에 더 힘쓸 것"이라며 "금융그룹 안에서 위험가중자산을 많이 증가시키는 비은행 M&A와 같은 의사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시점에서 비은행 중 보험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신한지주(055550)와
하나금융지주(086790)입니다. 신한금융은 그룹 계열사 중 손해보험 사업이 약점으로 꼽힙니다. 신한EZ손해보험은 올해 3분기 259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동기 순손실 52억원 대비 적자규모가 88억원 늘었습니다. 비은행 부문이 약진한
KB금융(105560)에 선두 자리를 내줬습니다.
하나금융은 전체 수익 규모로 따져봤을 때 타 보험사와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하나생명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익은 241억원으로 지난해 71억원 대비 41.8% 증가했지만, 하나손해보험은 25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우리금융지주(316140)는 최근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해 당분간 보험사 인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KB금융도 비은행 실적이 견고한 편인데요. 은행 실적 의존도가 56%로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낮습니다.
하지만 신한·하나금융도 보험사 M&A에 나설 가능성이 작습니다. 신한금융은 보험사 매물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M&A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나금융은 함영주 회장이 지난 7월 M&A를 통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하지만 박종무 하나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올해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은행의 절대 규모가 더 성장해야 한다"며 "비은행 강화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일단은 위험가중수익률(RORWA)가 높은 은행에 가장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매각 희망가 과대평가 여전
M&A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보험사 매물은 현재 롯데손해보험, KDB생명, 카디프생명, MG손해보험 등입니다. 롯데손보의 경우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JKL파트너스가 2~3조원대 매각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추산하는 적정 매각가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우리금융이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매각가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지난 7월 인수를 포기했습니다.
이밖에 보험사들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인수자는 영업 정상화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이 큽니다. 그나마 MG손보는 현재 메리츠화재가 인수 의향을 밝혔는데요. 입찰을 진행하는 예금보험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험사 외에 저축은행도 상상인, 애큐온, OSB, HB 등이 매물로 거론되고 있지만 M&A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상상인은 지난해 말 우리금융이 지분 인수를 위해 실사 등을 진행했지만 가격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매각이 불발됐습니다. 상상인은 이후 실적 악화와 건전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화생명이 한화저축은행의 지분 100%를 장외 취득하면서 4년 만에 저축은행 M&A가 이뤄졌는데요. 하지만 한화그룹 계열사로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인수였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으로 M&A 활기가 돌기엔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업권 전반적으로는 새로운 대주주가 유입된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현재 매물로 나온 저축은행들의 건전성이 좋지 않은 만큼 인수 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3분기 실적발표를 끝으로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당분간 위험관리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비은행 M&A가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