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 보고 어머님이래. 자기가 내 아들이야, 뭐야. 언제 봤다고 어머님이라는 건지, 정말 기가 막혀!”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한 여성이 통화 중이었는데, 내용으로 말미암아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직원으로부터 ‘어머님’이라 불렸던 모양이다.
한때 ‘아주머니’로 통용되던 중년 여성에 대한 호칭이 언젠가부터 ‘어머님’으로 대체된 듯하다. 본래 사전상 ‘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었던 ‘아주머니’가 일종의 멸칭이 되다시피 하면서 ‘어머님’이 대신 호출된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님’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도 함께 늘었다. 우선 상대가 나이가 많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인데다가 다짜고짜 누군가의 어머니로 칭하는 것이기 때문. 여성이라고 모두가 아이를 기르진 않으며,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어머니가 되는 것도 아닌데. 설령 실제로 누군가에게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게 당신에게도 어머니가 된다는 뜻은 아닌데.
얼마 전 종영된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를 두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남성 출연진에게는 정식으로 셰프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일부 여성들에게는 ‘어머님’ 혹은 ‘이모님’이라 칭했던 것이다. 간혹 젊은 여성 출연진에 대해서는 셰프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으나 일정 연령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어김없이 ‘어머님’과 ‘이모님’이 되었다. 출연진들은 <한식대첩> 우승자 이명숙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님이 계시니까 국은 딱”이라 이야기했고, ‘이모카세 1호’와 ‘급식대가’가 재료를 다듬는 장면에서는 “이모님들 깔끔하시다”라고 말했다.
물론 ‘어머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에는 유독 중립적인 느낌의 호칭이 부재한다. ‘아주머니’도 ‘아줌마’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떠올릴 만한 마땅한 단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어머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불편함을 표현하자 상대가 외려 되물었다 한다. “그럼 뭐라고 부르나요?”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나름 친밀감를 담아 소환해 낸 것이 ‘어머님’이었을 텐데.
하지만 친밀감이란 정확하게 표현할 때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다짜고짜 “형”, “언니”, “이보게, 사촌동생”하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할 필요도 없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친근하게 ‘이모님’이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어떤 친근함은 오히려 차별이 되기도 한다. 소설가 김훈은 <말년>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 풍기는 젊은 의사는 나를 ‘어르신’이라 부르고 더 젊은 간호사는 날 보고 ‘아버님’이란다. 나뿐 아니라 늙은이를 보면 닥치는 대로 ‘아버님’이다. (...) 내가 젊은 간호사를 ”딸아“하고 부르면 나를 미친 늙은이로 볼 것이다.”
‘아주머니’도 ‘어머님’도 ‘이모님’도 안 되면 대체 뭐라고 부르냐고? 내가 제안하는 단어는 ‘선생님’이다. 연령도, 성별도 들어있지 않은 가장 평균적이고 중립적인 단어. 물론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른다. ‘어머님’, ‘이모님’, ‘여사님’, ‘사장님’을 벗어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하지만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잘못된 친밀감보다는 어색함이 차라리 낫다.
한승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