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략적 소통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와 해야 한다

입력 : 2024-11-08 오전 6:00:00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퐁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 여명이 러시아에 파병되어 전선 투입이 임박했다고 한다. 미국도 처음엔 사실 확인 중이라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으나, 현재는 북한군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강경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한군 파병을 한국 안보에 대한 중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향후 북러 군사협력의 진전 추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방공시스템인 천궁-2 등 방어용 무기는 물론 공격용 무기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전장 탐색 및 북한군 포로 심문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참관단을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서는 한-우크라이나 양국이 전략적 협의를 추진하는 등 긴밀히 소통할 것임을 강조했다. 반면, 이런 한국의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조치에 가혹하게 대응하겠다며 경고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분명히 한국 안보에 중대한 도전이다. 북러동맹 복원으로 러시아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행위자로 본격 재등장했고,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대결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후견인을 추가로 확보함으로써 탈냉전 이후 최고의 전략적 환경을 맞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북한군이 러시아를 위해 피를 흘린다면 북한과 러시아는 혈맹의 관계가 되며,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러시아 개입이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파병은 세계에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실제 성사 여부를 떠나 억제의 효과를 내고 있으니, 바로 김정은이 노린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영화 흐름이 나타난다고 해서 이를 방치하거나 가속화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신냉전의 파고가 몰려온다면 방파제를 세워 그 피해를 최소화해야지 폭풍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행동이다. 언제부터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맹방이었길래 교전 중의 국가에 살상 무기 제공이니, 전략적 소통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가? 우리 안보에 대한 위협을 걱정하는 것은 북한이 러시아를 돕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을 반대급부의 내용과 성격에 주목하며 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다. 참관단 파견, 살상 무기 제공, 한-우크라이나 전략적 협력 등은 모두 북러 밀착을 가속화해서 한국의 안보를 더욱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먼저 북한군 파병을 곧바로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적 군사개입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속단이다. 모스크바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러시아는 한반도 전쟁에 직접 개입할 동기가 약하다. 유럽 방면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된 러시아로서는 극동과 북한이 안보적으로 사활적인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감수하며 한반도 전쟁에 러시아가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점은 한반도를 사활적 완충지역으로 여기는 중국의 시각과 다른 부분이다. 물론 한반도 유사시에 러시아는 북한을 지원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외교적 지지, 군사물자의 지원 등 간접적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다면 무엇보다 한러 관계를 관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며, 이는 우리 노력에 따라 충분히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북러동맹으로 한러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고착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러 밀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지정학적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러시아가 북한의 손을 잡은 것은 단순히 포탄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현재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신 유라시아 안보 질서 구상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유럽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러시아의 지정학적 방향을 동쪽으로 전환한 것이며, 북러 밀착은 이런 러시아의 대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대응이 주요 동인이며, 현재 북한에 경사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러시아는 남북 관계를 균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푸틴 대통령이 한국의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을 높이 평가하며 한러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반복 피력한 건 이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북한 문제 관리는 물론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한국과 러시아는 에너지와 제조업이라는 상호 비교우위를 가진 보완적 관계다. 따라서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성급한 행보는 자제하고, 러시아가 과도하게 북한에 경사되지 않도록 모스크바와 전략적 소통 채널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대응은 러시아의 북한 지원이 가시화될 경우 실행해도 늦지 않다.
 
국제질서에 진영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신냉전을 강조하며 이를 활용하는 것은 북한의 생존전략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피해야 할 지정학적 구도다.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한국에는 해양과 대륙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유라시아 대륙 외교를 경시하지 않았던 이유다. 불행히도 윤석열 정부 들어 한반도 전쟁 위기론이 퍼지고 있고, 한중 관계, 한러 관계가 모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조화에만 적극적일 게 아니라, 대외정책에서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회복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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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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