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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고려아연(010130)의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 증권업계로 전이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관 증권사가 사전에 유상증자 계획을 인지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사전 인지 여부가 밝혀지면 자본시장법상 고의 누락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KB증권, 잇달아 현장점검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KB증권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혐의는 고려아연 유상증자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 알고도 공개매수 신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는지 여부다.
금융감독원 (사진=IB토마토)
사태 시작은 지난 10월30일 오후 기습적으로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공시를 올리면서다. 소각 예정 주식을 제외한 발행 주식의 20%에 대항하는 규모로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신규 발행하는 조건이다.
앞서 KB증권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관정에서 온라인 공매매수 청약 창구 증권사로 참여했다. 금융감독원은 이 과정에서 KB증권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을 사전에 인지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31일 미래에셋증권에도 현장검사를 착수한 바 있다.
미래에셋증권(037620)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주관사이자 이번 유상증자에선 유상증자 모집 대표 주선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결정 공시에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은 단순 모집 주선사일뿐,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인수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주관 증권사 사전 인지 여부 '관건'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 공시 다음날 고려아연 유상증자 주선 증권사 현장점검에 나선 것은 이전 자사주 매입 과정에서 밝힌 고려아연의 계획과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10월11일 제출된 마지막 정정신고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일주일만에 조단위급 대규모 유상증가가 결정됐다.
여기에 더해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위한 기업 실사 기간도 문제가 됐다. 유상증자를 위한 10월14일부터 29일까지의 기간은 고려아연 공개매수 기간과 일부 겹친다. 공개매수 기간은 10월2일~23일이다.
고려아연 측은 금감원 지적에 대해 고려아연은 순전히 '단순 기재 오류'라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검토한 것은 지난 10월23일 이후의 일”이라고 해명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 10월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사건은 자사주 매입과 유상증자를 주관하는 증권사로 돌아가게 됐다. 고려아연이 실사 기간 관련 단순 오류라고 해명하긴 했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부족한 만큼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에 대한 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엄정한 조사를 공언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증자 사실을 알면서도 공개매수신고서에서 중대한 재무 변동이 없다고 고의로 알렸다면 중요 사항이 누락된 허위 신고이자 부정 거래”라며 “부정 거래가 성립하면 증권사도 방조한 혐의가 있다 할 수 있고 이를 확인해 의도성 여부를 따져볼 것"라고 밝혔다.
무능·위법, 선택지 놓고 고민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이 이번 유상증자 주선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수수료 수익은 미래에셋증권은 18억원, KB증권은 15억원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 유상증자를 사전에 인지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자본시장법에 따른 배상의 책임이 뒤따를 전망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신고서(정정신고서 포함)에 중요사항를 누락한 경우 증권의 인수인 또는 주선인도 손해에 관하여 배상의 책임을 진다. 또한 그 배상액은 청구권자(주주)가 실제 주식을 구입한 금액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변론 종결일 시장가격 또는 그 이전 증권 처분금액을 제외한 금액으로 결정된다.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부터)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0월29일 종가 기준 154만3000원까지 치솟았던 반면 다음날 30일 유상증자 공시 이후 하한가를 기록하며 108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튿날인 31일에도 7.68% 내린 99만8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한편 업계에선 이 같은 고려아연의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결정에 대해서는 이전 비슷한 사례에 근거한 법률자문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진행된 유상증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운영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160만주 1108억원 규모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를 추진했다. 당시 현대그룹 측의 지분율은 약 43.3%, 2대주주인 쉰들러 홀딩AG의 지분은 35%인 상황에서 쉰들러측의 보유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쉰들러측은 바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으나 법원은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신주발행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쉰들러 측의 소를 기각했다. 당시 쉰들러 측 법률 대리인은 김앤장이었다. 김앤장은 현재 고려아연 측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금감원 주장대로 주관 증권사가 해당 유상증자에 대해 아예 몰랐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증권사가 주도했을 가능성도 적다”라며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보면 금융에 대한 이해는 적어 보이며 법률 자문과의 조율 과정에서 이전 사례가 해결책으로 제시됐을 확률이 크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주관을 맡은 증권사는 무능과 위법 중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금융당국이 현재 사전 인지를 했다는 가정 하에 움직이고 있는 만큼 역설적이게도 무능함을 천명해야 위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현재 금융당국의 발표를 보면 주관 증권사가 알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고려아연이 주장하는 4일 만에 심사를 완료하는 방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유상증자에 대한 사전 인지를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위법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