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예술과 게임)①'그들만의' 게임 시상식

'산업'에 초점 맞춘 정부발 게임 시상식
대한민국 게임대상, '산업 육성'에 초점
대중문화예술상, 예술인 '사회적 위상'에 무게
사회적 편견 속 '게임이용장애' 불안한 게임계
"대중문화예술상에 게임인도 포함해야"

입력 : 2024-12-03 오전 6:00:02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은 대중이 즐기는 대표적인 여가 활동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정부 주최 시상식은 여전히 산업 진흥과 치하 목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에 현행 시상식이 '대중문화예술로서의 게임'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가 지난달 13일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게임대상 본상은 '개발사' 몫
 
정부는 지난달 13일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열었습니다. 수상자 대부분은 법인이었습니다. 이는 공로상과 우수개발자상을 제외한 다수 부문이 기술과 작품에 대한 시상으로 짜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상인 대상과 최우수상, 우수상, 기술·창작상 모두 게임인 개인이 아닌 개발사가 받는 구조입니다.
 
그에 반해, 10월31일 열린 '202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선 법인이 아닌 대중문화예술인과 산업 종사자들이 수상했습니다. 게임은 수상 대상에조차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대중문화가 아닌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대중문화를 '대중이 형성하는 문화'로 정의하는데요, 게임이 이에 부합한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일단 게임은 한국갤럽이 올해 5월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바 있고요. 대중매체 속에서도 게임 용어와 음악, 각종 패러디 등이 종종 활용되곤 하죠. 이는 게임이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개별 영역이 아님을 엄연하게 보여줍니다.
 
현행법상으로도 게임은 문화예술에 포함돼 있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게임을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국악·사진·건축·어문·출판·만화·뮤지컬과 같은 문화예술로 정의합니다. 시기에 따라 수상 대상에 차이는 존재하지만, 게임과 함께 나열된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대부분은 실제로 대중문화예술상을 받은 전례가 있습니다.
 
역대 대중문화예술상 수상자 직업은 △배우 △코미디언 △가수 △음악 프로듀서 △드라마 작가 △영화감독 △음반 제작자 △작곡가 △성우 △디자이너 △영화 프로그래머 △연주자 △만화가 △작사가 △모델 △스태프 △안무가 △촬영감독 △방송 PD △공연음악 PD △라디오 DJ △무술 배우 △뮤지컬 음악 감독 △음향 감독 △예술 감독 △녹음 예술가 △분장 스태프 △탤런트 등입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0월3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문화예술'이지만 '대중문화예술산업'은 아니다?
 
게임이 대중문화, 문화예술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식을 굳이 나눠 진행하는 이유는 두 행사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화예술상은 대중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게임대상은 산업 진흥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상의 목적은 "가수, 배우, 희극인, 성우, 방송작가, 연주자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창작 의욕을 높이"는 겁니다. 그에 반해 게임대상 목적은 "게임산업을 국가의 중추적인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고, 게임 창작 활성화를 위한 환경 조성 및 콘텐츠 다변화의 구조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각 시상식의 상훈 성격도 다릅니다. 대중문화예술상에선 일부 수상자에게 대통령표창을 주는데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대통령표창은 대한민국에 세운 공적에 대한 포상입니다. 그와 달리 게임대상의 대상에 해당하는 대통령상은 우수한 성적에 대한 시상입니다.
 
또 다른 행사인 '대한민국 콘텐츠대상'의 경우 게임인에 대한 대통령 표창을 실시하고 있지만, 시상식 목적은 "업계 종사자의 자긍심 고취 및 문화콘텐츠산업의 발전 도모"로 산업 성과·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민영 컴투스 제작총괄이 해외진출유공 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는데, 주된 근거는 해외 매출 성과였습니다.
 
이렇게 게임이 대중문화 혹은 문화예술로 인정받으면서도, 대중문화예술상에 게임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현행법상 게임이 '대중문화예술산업'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상 대중문화예술산업엔 방송·영화·비디오·공연·음반 등이 해당합니다. 대통령령에도 게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게이머들이 콘솔 게임을 즐기는 모습. (사진=엔바토엘리먼트)
 
"게임인 위상도 높여야"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의도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상식 자체가 게임 혹은 게임인의 지위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간접적으로 용인하게 될 가능성 때문입니다.  
 
현재 게임인들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질병분류(ICD-11)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9)에 도입할지를 두고 불안해하고 있는데요. 이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전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문화예술상의 취지를 감안해서라도 사회적 위상을 높여줘야 할 수상자에 게임인도 포함돼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0년 대중문화예술상 첫 시상식 보도자료에서 "한류를 선도하고 있는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그동안 외형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나, 산업 내부의 질적 성장과 사회적 위상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며 "대중문화예술인에게 공적인 권위를 가진 상을 수상하게 함으로써 대중문화예술인들의 품격과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문체부가 보는 이같은 대중문화예술의 실정은, 2022년 기준으로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67.8%를 차지했음에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달 15일 '지스타 2024'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서 게이머들이 '붉은사막' 시연판을 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에 <뉴스토마토>는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을 '대중문화예술'로 정의하는지' 물었습니다.
 
문체부는 "게임은 사전적 의미에서는 대중문화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현행 법체계에서 게임은 '대중문화예술산업법'의 규율대상이 아니라, '게임산업법'의 규율대상에 해당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중문화예술산업에 게임을 포함하는 정부 개정안을 냈거나 준비 중인지'에 대해서는 "대중문화예술상은 연기자, 가수, 코미디언 등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게임대상은 게임 분야에 한정해 게임 발전에 기여한 작품과 인물 등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게임대상은 1996년부터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게임인들의 공로를 치하하고, 게임인들이 함께 즐기는 행사"라며 "대중문화예술상과 게임 대상은 분리해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해당 문제에 대해 막연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 외에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선 게임대상 시상자 확대와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게임을 포함시켜, 대중문화예술상의 취지대로 해당 분야에 종사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게임인의 사회적 위상도 높여줘야한다"며 "법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선 대중문화예술상의 취지를 살린 시상 부문을 기존 게임대상에 신설하는 방법이 빠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WHO 게임이용장애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등 게임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며 "게임이 진정한 대중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예술상 시상 대상에 게임인을 포함하는 등 현재 인식과 법률 간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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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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