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 내 협동으로 얻은 고가 아이템을 혼자 챙긴 게이머에게서 아이템을 회수한 게임사 조치는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재판장 이현석)는 지난달 29일 '리니지M' 게이머 A씨가 게임 아이템을 돌려달라며
엔씨소프트(036570)를 상대로 낸 약관 무효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주위적 청구 중 약관에 대한 무효 확인청구 부분을 각하한다"며 "나머지 주위적 청구 및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A씨 "이익 취하지 않았다"
앞서 A씨는 지난해 4월 리니지M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게임 내 특정 보스를 물리치면 '에오딘의 혼'이라는 아이템이 반드시 나오는 행사였습니다. 이 아이템의 가치는 현금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씨는 같은 달 29일 B 길드에 소속됐거나 임시로 탈퇴한 게이머들과 함께 해당 보스를 쓰러뜨려, 에오딘의 혼을 주웠습니다. 그런데 A씨는 아이템 분배 관습을 어기고 아이템을 차지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아이템 무단 취득 신고를 받고, A씨 행위가 게임 운영 정책상 '레이드(단체 사냥) 악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A씨 계정 접속을 7일간 제한하고 에오딘의 혼을 회수했습니다. 회수한 아이템은 이후 B 길드 대표에게 지급했습니다.
A씨는 제재 근거가 된 약관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해당 약관이 '고객의 권리·의무 및 불이익'에 대해 구체적 범위를 정하지 않아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또 엔씨의 아이템 분배 관련 제재 기준인 '사전 합의'와 '부당한 이득'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A씨가 개인 자격으로 행사에 참가해 아이템 분배에 대한 사전 합의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다른 아이템을 만드는 재료에 불과하고, 거래도 불가능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A씨는 게임 이용으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다며, 에오딘의 혼을 자신에게 돌려주고 이 아이템을 팔 수 있는 거래 체계도 구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예비적으로는 아이템 원상회복에 갈음한 손해배상액 7500만원과 지연손해금 지급도 청구했습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법원 "상식 있으면 '부당이익' 뭔지 알아"
법원은 A씨 주장을 모두 배척했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A씨가 아이템 획득 이전부터 아이템 분배에 대한 사전 합의를 알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에오딘의 혼으로 'C의 각반' 아이템을 만들어 거래할 것이라는 길드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에오딘의 혼을 6000만원에 구매하겠다는 이용자에게는 "군주(대표자)들이 회의한 후 가져가실 겁니다. 제가 권한이 없어서요"라고 답했습니다.
재판부는 엔씨의 '레이드 악용' 조항이 위법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 약관 심사 후, 엔씨가 불공정 조항을 자진 시정해 공정성이 담보된다고도 판단했습니다.
A씨가 B 길드 탈퇴 후 개인 자격으로 이벤트에 참여해 레이드 악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씨를 비롯한 파티 구성원들이 사냥 직후 B 길드에 복귀한 점 △파티에는 길드 대표자도 포함돼 있던 점 △A씨 스스로 고객센터 게시판에 B 길드 팀에서 이벤트에 참여했다고 밝힌 점 △해당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한 대규모 전투가 예견된 상황에서, 게이머들이 상대방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임시로 길드를 탈퇴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전략을 쓰곤 하는 점 등을 들어 A씨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서비스 이용 제한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은 약관을 게임 운영 정책에 위임해 위법하다는 주장도 근거 없다고 봤는데요.
재판부는 "운영정책도 약관으로, 약관법이 적용돼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조항이 약관법에 따라 시정·개선될 수 있으므로 그 위임 자체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 위임 범위 및 내용도 '회원의 게임서비스 이용에 대한 본질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회사가 게임서비스 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으로 제한되므로, 구체적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전 합의'와 '부당한 이익'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전 합의, 부당한 이익에 해당하는 유형이나 기준을 일일이 세분해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아이템 분배에 대한 사전 합의를 위반해 아이템을 습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레이드 악용 조항의 취지, 제재 기준표에 함께 나열된 다른 제재 사유와의 체계 조화적 해석 등을 통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전 합의', '부당한 이익'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예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에오딘의 혼 아이템에 교환 가치가 없어 부당 이득을 얻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이템을 재료로 제작할 수 있는 'C의 각반' 아이템 등은 거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상당히 높다"며 "사전 합의를 위반하고 이 아이템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원고가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민법상 당사자인 엔씨소프트 의사로 채권 양도가 금지·제한된다며 배척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의 리니지M 이용으로 만들어진 데이터가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저작권법은 데이터베이스 제작·갱신·검증·보충에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해야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로 인정하는데, 게임 이용만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제작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엔씨의 제재조치가 적법해 아이템 원상회복 의무도 없다며 손해배상액 7500만원 청구도 기각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