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정훈 위원장이 새마을금고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안건을 의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김진양·차철우 기자] 미군정 57호 법령에 따른 피해자들이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 입법안을 마련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됩니다. 미군정 57호 피해 사실은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사건이라는 점이 입법안 마련에 가장 큰 장애물인데요. 때문에 국회에서부터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국민들의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야 입법 추진에 힘을 받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뉴스토마토>가 3일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미군정 57호에 따른 피해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는지' 물은 결과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의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의원들 중 몇몇은 "잘 알지 못하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기사를 통해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는데요. 반면 상당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관심을 두고 있지 않고 있다", "제대로 내용 파악이 안 돼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생소한 사건, 국회 공론화 필요"
미군정 57호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의견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말을 아끼는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보상 입법의 필요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원도 존재했는데요.
미군정 57호는 광복 직후인 1946년 3월2일부터 7일까지 미국 군정청이 지정한 7개 금융기관에 조선인이 소유한 일본은행권과 대만은행권을 예입하도록 한 강제 법령입니다. 당시 강제 예입시킨 뒤 되돌려주지 않아 결국 상당한 규모의 한국인들 사유 재산이 몰수됐습니다. 미군정 57호 발효에 따른 피해자는 총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사실 미군정 57호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보상 입법안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향후 입법까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정책 수립을 위한 논의의 장인 국회를 시작점으로 해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미군정 57호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생소한 사건으로, 입법까지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론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피해 보상 문제는 국회의 입법 없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사안인데요. 그 어느 때보다 여야를 뛰어넘는 초당적 협력이 필수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미군정 57호로 인한 피해 사실 진상 규명 노력을 단순히 '진영 논리'로 바라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2년 9월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 만드는 통일방안'을 주제로 한 2022 민화협 통일정책포럼에서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예입금 행방·유사 사건 파악해야"
행안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입법을 위한 선행 과제로 미군정 57호 법령에 따른 강제 예입금의 행방을 파악하고, 미군정 57호 피해 사례와 유사한 사건의 현황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모경종 민주당 의원은 "군정법령 제57호에 의한 강제 예입금의 총액과 모든 예금주에 대한 명세사항, 예입금의 행방이 파악돼야 하고, 청구권 자금으로 상환되었다면 그 금액의 행방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당 박정현 의원은 "입법 절차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미군정청의 행정 행위로 인해 본 사건과 유사한 수준의 국민적 피해를 수집한 뒤에 여러 사건을 포함해 진실규명을 하거나 구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피해 보상 입법안 마련을 위해선 미군정 57호 피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구체적인 실태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요. 이종걸 전 의원이 지난 2019년 2월 발의한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권 실태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가입 또는 구매한 보험, 채권 등을 보상받지 못한 재산청구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법안을 발의했는데요. 특별법엔 국무총리 소속으로 '실태조사위원회'를 두고, 실태조사 대상자가 재산청구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위원회가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특별법에 포함됐습니다.
박주용·김진양·차철우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