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우리가 매일 보는 유튜브 콘텐츠, 누가 만들까요? 방송·영화처럼 다수 스태프들의 피, 땀, 눈물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이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자빱TV’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도급제 노동자’로 인정받고 밀린 임금도 받은 겁니다. 이들의 용기가 유튜브업계를 넘어 특고·플랫폼 전반까지 바람을 일으킬지 <뉴스토마토>가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한때 구독자가 15만명에 달했던 게임 유튜브채널 ‘자빱TV’의 운영자 자빱이 돌연 방송을 접었습니다. 2021년 7월 스태프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착취에 시달렸다고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자빱은 한 달에 최대 1억원 가까이 벌었지만, 스태프들은 밤새 일해도 시급 1000원대 수준의 돈을 받았습니다. 스태프들은 자빱을 상대로 밀린 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지난 11월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정회일)는 자빱이 스태프 15명에게 1인당 600만원~3300만원의 밀린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요. 스태프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낮은 급여를 받는 데도 어떻게 상당기간 일할 수 있었을까요. 스태프 모두가 자빱의 '팬'이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못 받아도 그가 잘 되길 바란 마음으로 일을 한 겁니다. 자빱은 팬심을 교묘하게 악용했습니다. 자빱TV에서 일했던 스태프들은 <뉴스토마토>와 만나 "팬을 직원 삼아 착취하는 건 다른 유튜브 채널도 비슷하다"며 "부당한 일을 당하기 쉬운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법조계에선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 역시 방송·영화처럼 다수의 스태프가 만들지만 제대로 돈도 받지 못 하고 일하는 게 현실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팬카페 통해 지원…소규모 인원에 1인 다역
박효정(가명·24세·여)씨는 자빱TV 초창기 구독자였습니다. 짜빱이 게임을 하면서 시원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좋아 팬 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러던 2020년 3월 팬 카페에 채널 스태프 채용공고가 올라왔습니다. 프로그래머 취업을 준비하던 박씨는 전공도 살리고 좋아하는 유튜버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성해린(가명·30세·여)씨는 자빱TV 콘텐츠를 좋아했습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성씨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해 12월 자빱TV 스태프에 지원했습니다.
박씨와 성씨는 자빱TV 스태프가 됐습니다. 두 사람을 포함해 합격자 6~7명은 자빱TV 스태프용 오픈채팅방에서 모였습니다. 이름과 프로필사진 등을 감출 수 있는 오픈채팅방을 꾸린 건 자빱이 익명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자빱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안내를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자빱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나이도 몰랐습니다. 일하는 동안 자빱과 스태프 사이엔 어떠한 계약서도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자빱TV에서 맡은 업무를 이해하려면, 우선 자빱이 유튜브에서 했던 게임인 '마인크래프트(Mine Craft)'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 게임은 허허벌판에서 캐릭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토리를 만드는 겁니다. 영화를 찍는 것과 비슷합니다. 박씨와 성씨는 마인크래프트에서 활동하는 자빱 캐릭터를 위한 세계관을 기획하고, 세부 스토리를 짜고, 캐릭터를 디자인했습니다. 배경이 되는 소품 하나하나 만들었습니다. 실시간 방송을 할 땐 자빱과 함께 게임에 접속, 등장인물로 연기하거나 채팅을 해서 분위기를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찍는다고 가정하면, 스태프 한 명이 감독부터 작가, 배우, 관객까지 모든 역할을 다 했던 겁니다.
자빱TV 유튜브 채널 현재 재생목록. 15만여명에 달했던 구독자는 노동착취 사태가 불거지면서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사진= 유튜브 채널 자빱TV 캡처)
저임금 밤샘에 10㎏ 빠져…"유튜버 믿었는데"
박씨와 성씨는 저녁 7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일했습니다. 문제는 일할 땐 자빱의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자빱이 저녁에 방송을 하고 낮엔 취침 등을 이유로 연락이 안 됐다는 겁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꼬박 날을 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업무 강도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특히 자빱은 방송일을 앞두고 스태프들의 기획안을 전면 수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건강도 급속도로 악화했습니다. 박씨는 “일주일에 10시간 자며 일했다”며 “요리하는 걸 좋아했는데, 밥 먹을 시간이 없어 10㎏가 줄었다”고 했습니다. 성씨도 “잠을 못 자니 예민해져 대화가 안 됐다”며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처우도 형편없었습니다. 자빱은 여러 회차 방송하는 장기콘텐츠가 끝나면 임금을 정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회차 단기콘텐츠만 수차례, 언제 장기콘텐츠를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박씨의 첫 정산금은 60만원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6개월 뒤에야 받은 돈입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엔 185만원, 다시 5개월 뒤엔 350만원을 받았습니다. 돈을 주는 기간과 액수의 기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박씨는 2020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3302시간 일하고, 597만원 받았습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1809원 받은 셈입니다.
박씨와 성씨는 일에 애정이 컸다고 합니다. 박씨는 "내가 만든 콘텐츠로 자빱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했다. 내가 당장 돈을 못 받아도 저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며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다른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니 책임감이 커졌다. 하루라도 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성씨 역시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건) 자빱이 아직 돈을 못 벌어서 임금을 못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회수가 잘 나오고, 구독자가 늘면, 처우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며 "자빱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태프끼리 알아서 돈 벌 방법을 궁리하기까지 했다. 콘텐츠에 광고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우리 아이디어였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박씨와 성씨를 포함한 자빱TV 스태프 대다수는 사회초년생이었습니다. 어떻게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는지, 임금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노동법 지식이 전무했던 겁니다. 유튜브 채널마다 노동환경이 천차만별인 탓에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빱이 스태프들에게 '친목 금지' 규칙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자빱을 믿고 따랐던 스태프들은 친목 금지로 인해 사적인 연락을 하지 못했고, 동료와 임금·처우 등에 관한 문제를 공유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립된 겁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 점점 답답함과 의문이 들던 어느 날 새벽, 성씨는 스태프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여러분들한테만 말하는데…"라며 말을 걸었습니다. 그 한마디로 물꼬가 터졌습니다. 각자 임금과 처우에서 어떤 불합리한 일을 겪는지 털어놓은 겁니다. 이들은 자빱에게 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자빱은 "계약서를 쓰면 스태프들이 오히려 손해"라고 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대로 멈추면 피해자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았습니다. 2021년 7월 자빱TV 문제 공론화와 소송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자빱TV 노동착취 사건을 공론화한 스태프들이 만든 X(트위터) 계정. 자빱은 공론화한 스태프들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으나 불기소로 종결됐다. (사진=자빱TV 공론화 총공 계정 갈무리)
"좋아하는 일 한다고 '열정페이' 받아야 하나"
그런데 자빱TV만 아니라 다른 유튜브 채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기업이 아닌 개인 유튜버가 스태프들을 고용하는 경우는 스타트업의 고용 구조와 비슷하다"면서 "창업하고 직원을 고용하려면 노동법부터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갑자기 유튜브가 인기를 얻으면서 3~4명의 스태프를 고용하다 보니 아예 노동과 관련된 개념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튜브업계의 상황은 초창기 게임업계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게임업계는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들이 주로 모인 곳입니다. 게임업계도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기 쉬운 구조였습니다. 게임업계는 '크런치모드'라고 알려진 철야근무, 장시간 노동으로 문제가 됐었습니다. 차상준 민주노총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은 "게임업계 역시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차 지회장은 "1990년대 골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게임을 만들던 덕후들이 지금의 한국 게임산업을 만들었다"며 "환경이 바뀌어도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문화는 그대로였다. 다들 그렇게 일하니 참고 일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 전반이 다 비슷하다"며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고 열정페이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설사 노동자 스스로 채용에 지원, '착취적 상황'을 택했다 하더라도 법원은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자빱TV 스태프들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소속 이종훈 변호사는 "법원은 주관적 인식이 아닌 객관적 관계를 평가해 노동자성을 따진다"며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지휘·감독을 따지는 것도 갑을관계에서 을이 자신의 상황을 온전한 이해한 게 아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악한 유튜브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용부 근로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유튜브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된 만큼 노동청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