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게임 속 '표현의 자유'도 위협할 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
게임 서사와 게이머 간 소통도 위협 사정권
학계 "제작자 자기검열로 세계 경쟁력↓"
계엄, '정부 콘솔 진흥책 전면 부정' 지적도
"해외 콘솔업계, 신뢰 없이 정부와 일 못해"

입력 : 2024-12-05 오후 5:15:25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사랑 이야기, 가족 이야기, 우정 이야기,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3일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는 게임 속 '이야기'와 함께해 준 게이머들에게 플레이스테이션(PS) 30주년 감사 인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날 밤, 게임 속 이 수많은 이야기들은 억압 아래 놓일 뻔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 즉 이야기를 제한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입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가 3일 플레이스테이션 30주년 감사 인사에서 '이야기'를 강조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미지=플레이스테이션 코리아 유튜브 캡처·편집)
 
게임 시나리오도 군인 허락받고 집필할 뻔
 
표현의 자유라 하면 흔히 언론이나 출판에서 거론되곤 하죠. 그런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표현의 자유와 밀접한 게임산업에도 위협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입니다.
 
5일 게임·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사령부 포고문이 게임에 대한 검열·삭제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구체적으로 △게임 사업자 표현의 자유 △게이머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게임 내에서의 창작·표현의 자유 △게임물 자체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헌법과 계엄법은 비상계엄 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규정합니다. 지난 3일 계엄사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포고했습니다. 게임은 게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출판에 해당하는데요. 만약 계엄령이 계속 유지됐다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속 출판사 직원처럼, 게임사 직원도 게임 시나리오를 군인 허락받고 수정·집필해야 하는 겁니다.
 
게임은 이용자 수가 압도적인 매체입니다. 한국갤럽이 올해 5월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 1위가 게임인 만큼, 게임은 검열 1순위가 됐을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게다가 대작 게임은 대부분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자에게 도전하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올해 출시된 국내 게임 기준으로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가 대표적입니다. 게이머는 단순 시청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주인공의 '비판·저항정신'에 이입한다는 점에서, 게임에 대한 탄압이 컸을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이 이런 게임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로 간주할 경우 PC 게임 플랫폼 등록 취소는 물론, 디스크 유통 금지·회수 조치도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입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 디스크를 플레이스테이션4에 넣는 모습. (사진=이범종 기자)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사의 통제 대상이 확정되지 않은 채 계엄이 끝났지만, 게임도 표현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검열 대상이 됐을 것"이라며 "언론·출판은 표현의 자유를 총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계엄사가 통제 대상으로 밝힌 '모든 언론과 출판'에 게임도 걸리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게임물의 계속 출시 여부도 계엄사가 정했을 것"이라며 "과거 계엄 담당 부서가 서울시청 근처에 만들어져 군인이 잔뜩 들어앉았고, 온갖 매체가 출입해 다 도장 받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사가 중요한 패키지 게임업계가 '자기검열'로 위축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어떤 표현을 해도 되는지 남에게 허가 받는 상황을 겪어보면, 게임 제작자가 계엄에 안 걸리는 쪽으로 게임을 만들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세계 시장에서 왕창 위축될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게이머도 '체제 위협' 분류 가능
 
게임 개발자가 아닌 게이머 역시 체제를 위협하는 인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PC 온라인·모바일 게임 내 채팅이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게임의 지도 모양에 담긴 상징, 저항 의식을 담은 캐릭터들의 행동 등이 계엄사의 '처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인 이철우 변호사는 "집단 상호작용이 가능한 매체는 게임뿐"이라며 "온라인 게임은 신세대의 저항 매체가 될 수 있고, 캐릭터 닉네임 등 금칙어가 많아져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계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게임은 의외로 적을 수 있다는 의견도 일각서 나옵니다. 결국 게임의 내용이 체제에 반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라는 이유에섭니다. 강지현 리율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출판물법상 게임물과 출판물은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헌법상 언론·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아무런 제약이나 간섭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므로, 체제전복 목적과 내용을 담은 게임의 발행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콘솔 게임 진흥' 정면 부정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부가 5월 발표한 콘솔 게임 진흥책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정부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마이크로소프트(MS)·닌텐도와 함께 게임 시나리오를 선별해 제작·유통을 돕겠다고 했는데요. 콘솔 게임의 경우 사상과 표현이 중요한데, 이를 검열하는 정부와 어떻게 협업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입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비상계엄이 유지된다면 정부가 패키지 게임의 스토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양산형 게임이 쏟아진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한국 시장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의 협업 자체가 위험"이라며 "콘솔 사업자라면 이렇게 신뢰 주지 못하는 정부와는 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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