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이재명 취재기③) "원순 형님과 국민승리 길 가겠다"고 말했다가 역풍

입력 : 2024-12-10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이 비상계엄으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회에 의해 즉각 해제됐습니다. 분노한 국민과 야당은 이번 비상계엄을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을 탄핵키로 했습니다. 그리고 12월7일 국회에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됐습니다.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의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입을 모아 "윤석열 탄핵"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론으로 '부결'을 택했습니다. 아예 표결에도 참석하지 않은 겁니다. 민의를 저버린 국민의힘, 내란죄를 범한 대통령을 호위하는 데만 급급한 '내란의힘' 의원들 탓에 결국 탄핵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탄핵 결의, 탄핵소추안 폐기로 이어진 시간은 긴박했습니다. '이재명 취재기'를 연재하고 있는 제 시선은 자연스레 시선은 8년 전인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연루된 각종 의혹으로 탄핵에 몰렸습니다. <TV조선>과 <한겨레> 보도 등으로 박근혜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건 2016년 10월 무렵이었고,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건 2016년 12월9일이었습니다. 장장 두 달에 걸쳐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였고, 촛불을 들었으며, "박근혜 탄핵"을 주장했습니다. 당시의 탄핵의 열기는 지금 못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이재명이라는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도 드물던 당시, 이 시장은 누구보다 앞장서 "박근혜 탄핵"을 강조했습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과 중진 의원들이 정치적 역풍과 민심 이반을 우려해 차마 '탄핵'을 입밖에 꺼내지 못하고 몸을 사릴 때, 광화문 촛불집회 선두에 선 이 시장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변방장수' 기초자치단체장이 국회의원보다 더욱 주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정국을 계기로 이 시장의 정치적 인기와 위상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2월9~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19.7%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재명 시장은 14.9%의 지지율로 2위였습니다. 이어 △3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4.1%) △4위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5.4%) △5위는 박원순 서울시장(4.5%) △6위는 안희정 충남도지사(3.2%)였습니다. 유력 주자들을 제친 이 시장과 문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는 4.8%포인트에 불과했던 겁니다.(이번 여론조사는 12월9~1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유·무선 전화 임의걸기(RDD)를 통한 전화면접조사 방법을 썼으며 응답률은 14.4%로 집계됐습니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이 시장은 파죽지세였습니다. 당시 정치평론가들을 만나면, 이재명 시장이 조만간 문재인 전 대표와 지지도 '양강'을 이룰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이 탄핵되는 순간 이 시장이 지지도 1위를 하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때는 12월8일 저녁, 그러니까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해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이 시장은 국회를 찾았습니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회 정문 앞에서 '박원순과 국민권력시대-탄핵릴레이 라이브'라는 행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는 박 시장이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각계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탄핵 발언을 이어가는 자리였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을 하루 앞둔 그날, 이 시장이 연사로 초대된 겁니다. 
 
2016년 12월8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박원순과 국민권력시대-탄핵릴레이 라이브' 행사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시장이 연설할 때 우산을 함께 들어주면서 동지애를 표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그날 저녁 서울엔 정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빗속에도 박 시장과 시민들은 국회 앞에 진을 치고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시장은 밤 9시 즈음에 검은색 카니발을 타고 국회 앞에 당도했습니다. 이 시장이 연단에 서자 시민들은 "이재명"을 연호했습니다. 저는 이 시장을 따라 그날 그 장소에 갔지만, 이 시장의 발언을 받아 적지 못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에 노트북을 꺼내지도, 수첩에 정리하지도 못한 겁니다.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켰지만, 빗소리가 너무 세서 이 시장의 발언은 제대로 녹음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서는 기억을 되짚으며 그때 일을 수첩에 짧게 정리를 했습니다. 이번에 이재명 취재기를 연재하면서 당시 수첩에 적은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이 시장은 그날 "종이 국민을 배신하고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그런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국민이 주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우수한 지도자가 대중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의 집단지성은 너무 발달했고 똑똑해졌다. 그런데 정치인만 아직도 그걸 모른다", "촛불의 거대한 분노와 열망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한 걸로 나옵니다. 
 
이 시장은 발언을 끝낸 뒤 박 시장과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시장은 "제가 형님(박원순 시장)보다 나은 건, 제가 먼저 시장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형님한테 시장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알려드렸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이 시장을 향해 "요즘 참 부럽다. 이 시장이 잘 나가서 정말 부럽네요"라는 했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이 시장이 대선주자로 부각된 게정말 부러웠던 겁니다. 
 
이튿날 오후 4시10분 국회에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그런데 이후 엉뚱하게 일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12월10일 이재명 시장이 엊그제, 그러니까 12월8일 박원순 시장과 함께 했던 자리를 떠올리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겁니다. 글의 제목은 '원순 형님과 함께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습니다'였습니다.
 
글의 주요 내용은 "박원순 시장은 국민권력시대를 말씀한다. 국민들이 주인 되는 나라를 위해 검찰·재벌을 포함한 사회의 대대적 개혁을 주장한다. 저의 생각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저는 늘 팀플레이를 말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이겨야 하며, 우리가 이겨야 우리 중에서 MVP가 나오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국회 앞에서처럼 '원순 형님'과 함께 같은 우산을 쓰며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국회 앞에서 박 시장과 함께 탄핵 릴레이를 했던,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는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사진=이재명 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캡처. 캡처 당시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한다'라는 그 모습에 꽂힌 걸까요. 이 시장은 12월12일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 안희정 지사, 김부겸 의원과 한 우산을 쓰고 국민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같이 팀플레이해야 된다. 결국은 다 합쳐서 하나의 공동체 팀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 인정하고 역할 분담해야 되고 MVP가 누가 될지 즉 최종승자가 누가 될지 국민에게 맡겨야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전 페이스북 글과 이날 라디오 인터뷰 이후 이 시장은 '반문연대', 즉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반대하는 전선을 형성하려고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페이스북에 '이재명 시장님 유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대의도 명분도 없는 합종연횡은 구태정치"라는 입장을 내고 이 시장을 직격하고 나섰습니다. 안 지사는 "정치는 대의명분으로 하는 것이지 '밑지고 남고'를 따져서 이리 대보고 저리 재보는 상업적 거래와는 다른 것이다"며 "안희정 박원순 김부겸 이재명이 한 우산, 한 팀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대의와 명분을 우선 말해야 한다. 대의와 명분이 바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정치"라고 했습니다. 
 
이 시장은 과거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지지단체인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공동 대표였던 이력 탓에 가뜩이나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관계가 나빴습니다. '우산 발언'을 다른 사람이 했었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노·친문의 눈엔 그 발언을 '이재명'이 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원순 형님과 국민승리 길 가겠다"로 시작된 '우산 발언'으로 이 시장은 이번에도 반문연대를 획책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시장은 박 대통령 탄핵 전만 해도 "대선주자 중 문재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문제의 발언 이후 이 시장은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2017년 내내, 대선에 출마한 뒤에도 이 시장은 다시는 예전과 같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계속)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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