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친원전 정책으로 수혜를 받아온 두산그룹이 비상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증기 터빈 공급 예정이던 체코 원전 수주에 불안감이 나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재편안이 무산됐습니다. 이에 따라 회사의 성장 사업에 투자할 계획도 덩달아 사라졌습니다. 대형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가스·수소 터빈 등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두산의 목표 달성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12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계엄 사태 이후 두산의 사업 구조 개편 계획이 철회되자 회사의 산업 경쟁력 확보 계획이 멀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계엄 사태와 이어진 국내 탄핵 정국, 국회의 친원전 관련 예산 삭감 등은 체코 원전 수주를 비롯해 향후 원전 수출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이로써 원전 등 에너지 기업들이 산업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현 정부의 친원전 정책으로 되살아난 두산이 윤 대통령이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라고 걱정했습니다.
두산의 자회사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사업구조 개편으로 확보할 재원 약 1조2000억원을 자사 핵심 사업으로 꼽은 대형원전과 SMR 등에 투자할 계획이었습니다. 향후 해외 발전 사업이 많아질 것으로 보고 원전 사업 경쟁력을 미리 키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위해 두산의 계열사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7월부터 두산밥캣의 분할·합병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분할·합병 계획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 급락으로 무산됐습니다. 주가가 하락한 건 비상 계엄이라는 돌발 변수에 따라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 3월 정부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사업 수주 최종 계약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체코 정부는 지난 7월 24조원대 규모의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를 선정했습니다. 이 팀에 속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계약이 체결되면 체코 현지에 있는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증기 터빈을 공급할 예정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가스터빈 초도호기 최종조립을 위해 로터 블레이드를 케이싱에 설치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가 있던 바로 다음날인 4일 1만900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전날 2만1150원 대비 약 10.2% 급락한 겁니다. 이어 하락세가 연일 계속됐고 전날에는 1만7230원을 기록했습니다.
비상 계엄 전날 대비 18.5% 떨어진 주가입니다. 다만 체코 정부가 계엄 사태 여파로 원전 사업에 차질이 없을 것이란 입장을 내 이날 오전 주가가 전날보다 증가했지만, 비상 계엄 전과 비교해서는 한참 떨어진 가격입니다.
당초 두산은 이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임시 주총을 열고,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옮기는 분할·합병 계획에 대한 주주 동의를 구할 예정이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 추진 과정에서 소액 주주들의 이익 침해 논란으로 반대세가 심하자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 떨어지면 약속된 주가에 주식을 사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가는 1주당 2만890원이었습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총 표결에서 기권이나 반대를 해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가 급락에 주주들이 분할·합병에 반대할 확률이 커졌고 두산이 정한 주식매수청구 상한 대금인 6000억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두산은 이같은 상황에 분할·합병안 부결을 예상하고 계획을 백지화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예상치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주가가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 괴리가 크게 확대됐다"며 "종전 찬성 입장이었던 많은 주주들이 주가 하락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반대 또는 불참으로 선회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이어 "분할합병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졌고,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면서 "회사는 불확실성을 남겨두는 것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진행해 회사 방향성을 알려드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임시 주총을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두산이 사업구조 재편을 재추진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미래 원전 관련 시장 선점 의지는 유지했습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현 상황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회사 역시 당장 본건 분할합병 철회와 관련하여 대안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추가 투자자금 확보 방안과 이를 통한 성장 가속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 성남시 두산타워 전경. (사진=두산)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