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긴급 대국민담화 발표에서 비상계엄령을 발표하고 있다. (YTN 뉴스 화면 캡처,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내란 피의자' 윤석열 씨에 대한 탄핵으로 올해 조기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지난해 윤 씨가 촉발한 12·3 내란 사태를 계기로 더욱 분출하는 모양새입니다.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지적인데요. 한계에 봉착한 '87년 체제' 종식이 22대 국회에 숙제로 주어졌습니다. 다만 개헌의 방법론과 시기 등을 놓고 여야가 다른 셈법을 하고 있어 실제 개헌이 이뤄지기까지 난이 예상됩니다.
조기 선거 확정적…이르면 '벚꽃 대선'
1일 정치권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일단 '8인 체제'를 갖추게 된 만큼 윤 씨에 대한 탄핵심판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상 헌재는 탄핵심판 사건 접수 후 180일 안에 선고를 해야 하는데요.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해 윤 씨를 파면할 경우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됩니다. 현재로선 인용 가능성이 높아 조기 대선은 사실상 확정적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윤 씨의 파면이 결정되면 이르면 3월, 늦어도 8월 전 대선이 열리는데요. 앞서 역대 대통령들의 헌재 심리 기간을 감안하면 올해 조기 대선은 4월쯤 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야권의 대선 구도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독주 체제지만,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도 활동 폭을 넓히고 있어 주목됩니다. 탄핵 과정에서 주목 받은 우원식 국회의장도 야권의 대권주자로 부상했습니다. 다만 야권에선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변수인데요. 대선 전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나와 확정된다면 이 대표의 차기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탄핵 정국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내부 경쟁이 예고되는데요. 여권은 확실히 앞으로 치고 나가는 주자가 없는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분류됩니다.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도 대선 출마를 시사했는데요. 제3의 후보로 나설 이 의원이 조기 대선 국면에서 여권 후보와 단일화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임명권·거부권' 남발…국회 무시한 '윤석열'
이러한 상황에서 조기 대선이 진행될 경우를 대비해 정치권 안팎에선 헌법 개정 요구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권위주의의 산물인 제왕적 대통령제입니다. 윤 씨가 비상계엄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폐해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잘못된 권력의 사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윤 씨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한껏 행사했던 대통령입니다. 실제 윤 씨의 2년 반 동안의 정치 행보는 '입법부 없는 국정운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윤 씨는 시행령 정치를 고집했고, 국회의 동의 없이 장관을 임명하는 건 당연시됐습니다.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도 남발됐습니다. 특히 부인 김건희 여사의 각종 범죄 의혹을 감쌌고 특검법에 대해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대통령실과 입법부가 대립의 길을 걷게 되는 주요 요인이 됐습니다.
12·3 내란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현행 대통령제와 같이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고 일방적이면, 대통령이 훌륭한 개인적 리더십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삶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권력 집중도를 낮추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안건으로 열린 본회의에서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적 양극화' 심화…대화·타협 '실종'
여기에 제왕적 대통령권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권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극단적 강성 진영 논리가 힘을 얻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도 계속돼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고, 이는 정치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실제 윤석열정부 들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단 한 번 만나는 데 그쳤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개헌론이 분출했습니다. 이번에 윤 씨의 탄핵을 계기로 개헌론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다만 여야 모두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시기를 두고 의견이 엇갈립니다. 여당에선 대선 전 개헌을, 야당에선 대선 이후 개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탄핵정국에서 내부 수습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여당과 탄핵 완결 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야당의 이해관계가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대통령의 사면권과 법률안 제안권·거부권, 인사권 등 행정부 수반이 가지는 권한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