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사고기, 랜딩기어 수동 조작에 2분30초…물리적 시간 부족?

사고기 B737-800 운항 매뉴얼 보니
수동 랜딩기어 레버 당겨 15초 유지
위치는 부기장 좌석 왼쪽 뒤편 바닥
의자 밀고 뚜껑 여닫으면 약 2분30초

입력 : 2025-01-08 오후 3:12:37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179명의 사망자를 낸 제주항공(089590) 참사에서 가장 큰 의문은 사고 당시 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새떼 충돌로 엔진이 모두 꺼지더라도 수동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실제 사고기 기종인 보잉737-800 매뉴얼을 보니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작동하는 데는 최소 2분30초나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비상착륙 시점까지 고려하면 수동으로 작동하기에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2024년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기종인 보잉737-800에 대한 운항승무원의 운영 매뉴얼 일부. 매뉴얼 2번을 보면 수동 랜딩기어 레버를 끝까지 당기면 잠금 장치가 해제돼 적색 경고등이 켜진다고 나와 있다. 매뉴얼 3번은 수동 기어를 당긴후 15초 동안 유지하라고 나와 있다.(사진=뉴스토마토)
 
8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운항승무원(기장·부기장)의 B737-800 운영 매뉴얼에는, 조종실 중앙 콘솔에 위치한 랜딩기어 장치가 조작되지 않을 때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수동 랜딩기어는 부기장 좌석 왼쪽 팔걸이 뒤편 바닥에 있는데,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조작하려면 우선 부기장이 좌석을 뒤로 뺀 뒤 바닥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이때 시간이 1분 45초 가량 소요됩니다. 이후 세 개의 레버를 하나씩 당기고 레버마다 15초를 유지해야 합니다. 세 개의 레버를 모두 당기는데만 45초가 걸리는 셈입니다. 조종사들은 수동으로 작동하는 전 과정에 최소 2분30초가 소요된다고 말합니다. 
 
부기장과 가장 가까운 레버는 오른쪽 뒷바퀴를, 중앙 레버는 앞바퀴, 나머지는 왼쪽 뒷바퀴를 내리는 레버입니다. 레버를 당길때마다 조종실 계기판에는 바퀴를 물고 있던 잠금장치가 해제됐다는 신호로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잠금장치가 해제되면 바퀴는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집니다. 
 
B737-800을 모는 현직 조종사는 “시뮬레이터(모의비행) 훈련에서 수동 랜딩기어는 부기장이 전담한다”며 “기장도 수행할 수는 있지만 수동 랜딩기어 조작은 비상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기장이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는 수동 랜딩기어 장치가 부기장 자리에서 더 가깝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왼쪽)부기장 조종석 왼쪽 팔걸이 뒤편 바닥에 위치한 B737-800 수동 랜딩기어 장치. (오른쪽)수동 랜딩기어 내부 모습.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내릴 수 있는 레버 세 개가 보인다. 부기장과 가장 가까운 레버는 오른쪽 뒷바퀴를, 중앙 레버는 앞바퀴, 나머지는 왼쪽 뒷바퀴를 내리는 레버다. 당긴 레버는 15초를 유지해야 한다. 당기는 과정에서 바퀴를 물고 있는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중력에 의해 바퀴가 내려온다. (사진=독자제공/유튜브 캡처)
 
전문가들은 동체착륙을 앞둔 사고 당시 시점을 고려하면, 2분30초의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수동 랜딩기어 작동까지 최소 2~3분이 걸리는데 당시 조종석은 이 시간마저 확보가 어려운 아주 급박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또 “비행기가 복행(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것)해서 360도가 아닌 180도만 선회하고 19번 활주로에 비상 착륙한 시점을 보면, 수동 랜딩기어를 작동할 시간이 안 됐던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추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메이데이 선언 직후부터 동체 착륙한 시점까지를 미뤄볼 때, 사고기는 수동 랜딩기어 조작 시간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상착륙의 특성상 수동 조작이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국내 한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한 기장은 “투엔진 손실로 출력이 불가한 상태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착륙하려면 조종간을 있는 힘껏 당겨 기수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이때 기장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부기장도 조종간을 잡아줘야 한다”며 “기장, 부기장이 조종간을 잡은 상황에서 부기장이 수동 랜딩기어를 작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무안공항 격납고로 인양한 사고기 양쪽 엔진과 함께 랜딩기어 등 주요 부품을 수거·정밀 조사하고 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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