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내란 수괴에게 무시당한 언론

유일하게 '김어준 뉴스공장'에만 간 계엄군
언론이 윤석열에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것
대중 원하는 뉴스와 저널리즘 간극 메워야

입력 : 2025-01-1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계엄군이 유일하게 간 곳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기자들은 X나게 부끄러워해야 해.”
 
지난달 4일 새벽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겸손방송국 사옥을 계엄군이 통제하는 모습.(사진=유튜브 갈무리)
 
오랜만에 만난 언론계 선배는 소주잔을 앞에 두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계엄군이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 오지 않고 뉴스공장에만 갔다는 건, 윤석열·김건희 부부에게 한국언론은 김어준만큼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지.“ 그 선배는 한국언론이 더 치열하게 윤석열과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내란사태라는 미친 짓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보는 듯했다.
 
실제 계엄군은 부정선거의 근거를 찾기 위해 김어준이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을 장악하려 충정로 사무실 앞에 간 것이었지만, 계엄 포고 뒤 그 어느 언론사에도 계엄군이 들이닥치지 않으면서, 모든 언론이 한순간에 내란수괴가 장악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 된 것은 맞았다.
 
또한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은 차치하고라도, 그 선배가 적을 두고 있는 신문사나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지난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과 치부를 더 신랄하게 비판했다면, 윤석열이 비상계엄 같은 망동을 차마 벌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역대 최악의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낸 그 숱한 의혹과 논란의 심각성에 비해, 진보매체의 예봉이 그리 날카롭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윤석열 정권에 대한 기성 매체의 비판은 야당에 대한 비판과 뒤섞여 흐리멍텅해지기 일쑤였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의 대원칙은, 불편부당이라는 자기검열로 인해 언제나 양비론으로 물타기되곤 했다. 한국언론의 눈엔 윤석열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기소도 문제지만, 그 선택적 수사와 기소로 재판받는 이재명도 문제였다. 때린 놈도 나쁘고 맞는 놈도 나쁜 것이다. ‘사법 리스크’라는 표현은, 한국언론이 객관성이라는 모호함 뒤에 숨어 적극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여기에는 윤석열이 조중동을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대통령이라는 점도 작용한 듯싶다. 때로는 적극적 보도로, 때로는 소극적 보도로 윤석열이 당선되는데 크고 작게 기여한 한국언론이 이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면서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1년 신동욱 TV조선 앵커의 '앵커의 시선, 범이 내려온다' 방송 화면.(사진=TV조선 유튜브 갈무리 )
 
원래 강직한 검사 윤석열, 권력과 맞선 검찰총장 이미지는 수구언론 혼자 만들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조중동은 재벌수구동맹의 이익에 따라, 진보성향 매체들은 공정성이라는 헛깨비 프레임에 홀려 윤석열의 탄생을 거들었다. 윤석열 검증에 치열했던 <뉴스타파>와 같은 매체가 레거시 미디어 가운데 한 둘 더 있었다면, 명태균 게이트를 폭로한 <뉴스토마토>의 연속 기사 같은 보도가 대선과정에도 있었다면, 대통령 윤석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김어준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파성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면서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레거시 미디어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불편부당과 객관보도는 애초에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의 방송은 단순했다. 누가 때렸고 누가 맞고 있는지, 누가 잘못을 했고 누가 피해를 봤는지 말할 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논조가 뉴스소비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진영 갈등을 부추기는 부정적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아울러 그의 방송이 또다른 형태의 상업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오늘날 극우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시작이 그였다는 점과, 지난 정부에서 벼락출세한 윤석열을 옹호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진보언론이 젠더나 기후위기 같은 지당하신 말씀에 올인하면서, 정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옳고 그름의 구별을 게을리할 때, 그가 큰 영향력으로 그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보기 드문 태도가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심기를 거슬렀을 것이라는 점도.
 
혹시라도 적들에게 빌미를 줄까 수년째 술도 마시지 않는다는 김어준에 비해, 나를 비롯한 한국 기자들은 자신의 보도를 위해 어떤 자기경계를 해왔나. 이제 한국언론은 김어준을 무시해 온 알량한 자존심을 접고, 대중이 원하는 뉴스와 저널리즘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내란 우두머리에게 무시당하는 언론이라면 부끄럽지 않은가 말이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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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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