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 내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 불참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올해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이 최종 확정될 경우 '반쪽 행사'로 전락할 전망입니다. 앞서 참석을 시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불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내란 정국 장기화에 따른 '외교 리스크'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미국, 유럽 특별방문단 의장친서 전달 차담회에서 조경태, 정동영 한미의원연맹 공동회장을 비롯한 미 방문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경태, 정동영 공동회장,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시스)
미 기업 CEO 불참…트럼프 최종 선택은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정동영(국회 특별방문단장) 민주당 의원은 19일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며 "미국 측이 밝힌 우려에 대해 정부 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정 의원은 여야 의원들과 함께 지난 10~16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정 의원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불참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미국 상공회의소를 비롯해 민간 측이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 의원은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스콧 스나이더 소장도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회의 모두 발언에서 APEC에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참석도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우려한 문제점은 숙소 부족 등입니다. APEC의 정상적 개최를 위해서는 21개국 정상들과 글로벌 CEO들이 묵을 고급 숙소인 프레지덴셜 스위트(PRS·Presidential Suite)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PRS 추진위원장을 맡아 직접 현황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경북도는 5성급 호텔 수준의 PRS를 총 35개 마련한다는 계획인데요. 현재 16개는 확보됐으며 19개는 리모델링 중에 있습니다. PRS는 각국 정상과 CEO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예정입니다. 또 국가 관계자 등을 위한 객실은 보문단지 반경 10㎞ 이내에 총 1만 2812개가 확보됐습니다.
하지만 정 의원은 "미국 측은 APEC 개최를 위해 2만5000여개 이상의 숙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APEC 관련 내용은 특별방문단이 먼저 언급한 게 아니라, 예상 외로 미국 측에서 먼저 언급했다"고 했습니다.
미국 측은 경주와 공항 사이의 거리, 교통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CEO들의 이동도 결국에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APEC 기간 △최고경영자회의(CEO Summit)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회의 △APEC 정상과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간 대화 등이 예정돼 있어, CEO들의 불참은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025 APEC CEO 서밋 추진위원회 의장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5 APEC CEO 서밋 추진위원회 출범식'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중 정상회담 무산 땐…'갈등 장기화'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이 최종 확정될 경우 주요 2개국(G2) 정상의 만남도 불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된 바 있는데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7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만남에서 "APEC 정상회의에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 불참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그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외교 리스크가 내란 정국 장기화에 따른 국정 공백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측이 숙소 등의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한국 패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 정상 간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미 미국을 찾아 미·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것과 대비됩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한국에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인 상황에서 미국 측에서 우려 의견이 전달된 만큼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APEC 준비에 있어 외교 공백은 파장이 큽니다. 5월께 APEC 회원국 및 지역에 초청장을 보내야 하는데 '권한대행' 명의로 보낼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합니다. 원칙적으로 APEC 의장국인 한국의 대통령 명의로 초청장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APEC을 계기로 정상 외교가 활발히 진행돼야 하는데,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사실상 '올스톱'된 실정입니다. 때문에 의장국으로서의 실익을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외통위는 오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APEC 준비 상황에 대해 점검한다는 계획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