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의정 갈등이 1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면서 병원은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고,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병원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료공백 책임이 결국 병원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거죠.”
배동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은 19일 <뉴스토마토>와 만나 “의사 수 증원이 논의되고 의료개혁이 추진된 건 애초 시민들의 건강권 문제 때문인데, 의정 갈등 상황이 1년째 이어지면서 본질은 도외시되고 있다”며 “병원에서 환자와 노동자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배동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 (사진=의료연대본부)
지난해 2월19일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해 집단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현장 복귀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3531명 중 1174명(8.7%)만이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병원 현장에선 부족한 인력을 기존 의료진과 병원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병원노동자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료기사 등을 가리킵니다.
배 사무국장은 “병원은 경영위기를 선언하고 위기 극복이란 미명 아래 병원노동자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며 “병원인력 감축과 무급휴가, 초과근무 확대 등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선 의료공백 사태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 부족만이 아니라 의료 현장의 열악한 노동, 시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의료 시스템 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이번 사태 이전부터 전공의들은 과도한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병원을 떠나고 있고, 간호사들 역시 높은 노동 강도와 낮은 처우로 인해 이직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의료연대본부는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암병원 서성환홀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의료공공성 강화와 공공병원 확충, 공공의사 충원 등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의료연대본부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병원노동자 84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 이후 초과근무와 근무로 식사를 거른 날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23.9%, 23.4%에 달했습니다. 또 간호사들의 59.7%는 간호사 업무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수행하는 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공의 이탈로 외래진료와 입원, 수술이 지연되면서 환자들도 제 때 진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32.4%는 환자 안전사고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는데, △충분한 교육 없이 전공의 업무를 타 직종에게 전가(59.8%) △구두 처방의 증가(34.1%) △담당교수에게 환자 상태에 대해 직접 의사소통하기 어려움(30.3%)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배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화에 나서고 시범사업에 나섰지만, 현장에선 PA 간호사들의 60% 가까이 업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불안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관련 시행령이 정비되면 실제 법적 제도화가 이뤄지는 상황인데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에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본부가 만든 집단휴진 철회 관련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실제 설문조사에서 PA 간호사들 중 업무와 관련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 58.7%로, 이들은 △직무기술서 부재로 구분 없는 업무 전가(55.6%)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부재(37.8%) △임상연구 보조 등의 부당한 업무 요구(31.1%) △과도한 업무량(28.9%) 등의 문제를 토로했습니다.
배 사무국장은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고 붕괴 위기의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전공의 집단사직 전부터 지역과 공공의료 붕괴, 병원노동자들의 과로와 열악한 처우, 병원의 비민주적 운영 등은 고질적인 문제였다”면서 “진정한 의료개혁이 이뤄지려면 의료 노동환경 개선과 공공의료 확대, 병원 조직문화의 변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도 의료분야를 시장에 맡기는 민영화 정책들을 철회하고 지역·필수의료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공공의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의료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현장에서 환자들의 고충과 노동자 의견을 반영해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민주적인 절차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