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게임+)현실감과 불편함 사이, '사이코데믹'

애니 캐릭터와 실사 증거 조합
CCTV 분석 너무 많아 지루해
수사보고서 쓸 때 쾌감이 보상으로

입력 : 2025-02-21 오후 3:58:34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2023년 9월5일. 동경의 한 제약회사 건물 지하에서 다리만 남고 소각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이 상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인체 자연 발화 현상(SHC)'에 난감해하자, 세상에서 잊힌 탐정 사무소가 컴퓨터를 켰습니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시리즈로 익숙한 그라비티가 패키지 게임 '사이코데믹 ~특수 수사 사건부 X-FILE~'로 추리 마니아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칸자키 요시카즈 감독은 2D로 그려진 인물과 실사 증거를 뒤섞어, '허구 속의 현실감'을 강조했습니다.
 
 
괴사건의 흑막 추적
 
이 게임은 이와이 탐정 사무소 탐정인 게이머가 다크웹의 도움으로 경찰 수사자료를 분석해 진상을 밝히는 구조입니다. 벽에 붙인 문서와 사진을 붉은 실로 연결하고, 실사 촬영된 CCTV를 앞뒤로 돌리며 피해자 행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무소가 괴현상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이비 종교 집단 '이능교단'이 흑막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능교단은 이능력자를 만든다며 사람들을 실험해 죽인 집단입니다. 게이머의 동료 아키바 도모나는 4년 전 이능교단에 의해 동생을 잃었습니다. 이능교단을 쫓던 이와이 탐정 사무소장은 누명을 써 교도소에 수감됐고, 사무소도 해체됐습니다.
 
이 일로 사무소의 조력자 기지마 로렌스 유이카는 경찰 조직을 믿지 못해 공안청을 떠났고, 지금은 법무성에서 이능교단 교주 야마노이의 행적을 쫓고 있습니다.
 
게이머와 아키바, 기지마는 불가사의한 미해결 사건에서 야마노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비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능교단이 관여했을지 모를 인체 발화 사건을 접한 겁니다.
 
실제 사건 수사하듯 보드를 채워야 한다. (이미지=사이코데믹 실행 화면)
 
게이머는 우선 경찰 수사 자료를 봐야 합니다. 현장 사진 일부를 확대해 증거를 쪼개고, CCTV로 피해자가 어디서 무얼 했는지 살피는 겁니다. 피해자 주변 인물의 진술서로 그의 성격과 지병, 계획 등을 파악할 수도 있죠.
 
부족한 자료는 다크웹 '다크핏'의 협력자가 제공합니다. 다크핏 운영자 메카닉, 약품·의학에 능통한 바텐더, 오컬트 지식이 깊은 오드 등이 각종 문건을 전송해 증거 해석을 돕습니다. 경찰 사건 자료를 빼돌려주고, 조사 결과를 수사 기관에 전달하는 중개인도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실사 촬영된 CCTV 분석입니다. 두 개의 화면에 사진이나 영상을 띄워 분석할 수 있는데요. 물론 한쪽 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틀 수도 있습니다. 우선 2D로 그려진 피해자 얼굴 사진에서 인공지능(AI)이 특징을 뽑아냅니다. 이후 CCTV에 나타난 사람들의 얼굴과 대조해 피해자 동선을 파악하는 겁니다.
 
콘솔을 이용해 CCTV 속 피해자 흔적을 찾아야 한다. 첫 사건의 12개 영상 가운데 피해자 모습이 없는 비디오가 더 많다. (이미지=사이코데믹 실행 화면)
 
실제 같아서 답답할 수도
 
역설적으로 사이코데믹의 단점은 이런 실재감에서 비롯됩니다. 처음 한두 번은 흥미를 갖고 실사 영상을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약 5분에 달하는 영상 열두 개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이 점점 귀찮아집니다.
 
물론 영상을 뒤로 10초 감거나 30초 빨리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이 피해자 얼굴을 놓칠까 봐 2배속으로 끝까지 봐야 했습니다. 뚜렷한 선형 구조에 핵심만 요약한 증거로 편의성을 높인 다른 게임을 생각하면, 이런 실재감과 합리성이 불편 혹은 당혹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콘솔에서 화면 두 개를 띄울 수 있지만, 동시에 틀 수는 없다. (이미지=사이코데믹 실행 화면)
 
이렇게 인내하며 서류와 사진을 증거 보드에 채우면, 산 정상에 올라 조망하는 기분이 드는데요. 마침내 경찰에 보낼 보고서를 쓰는 대목에선 롤러코스터 내리막을 달리는 쾌감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이 성취감은 두 번째 사건을 조사하는 동력이 됩니다.
 
사이코데믹은 닌텐도 스위치를 지원하지만, 작은 화면으로 즐기기 힘듭니다. 게임성 자체가 진득함을 요구하기도 하죠. 그러니 속도감 있는 이야기보다 고생 끝에 오는 낙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사이코데믹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추리 게임일 겁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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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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