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오는 25일 열리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정기 주주총회에서 서정진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통과되면 앞으로 2년간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회사의 경영이 좌지우지될 전망입니다. 서정진 회장이 오너 경영 체제 굳히기에 나서자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이사의 경영승계 이슈도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11일 공시에 따르면 서정진 회장의 일가의 셀트리온 지분율은 3.81%로 미미합니다. 하지만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셀트리온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셀트리온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서정진 회장은 최대 주주인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을 98.13%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정진 회장은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셀트리온 지분 21.96%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구조죠.
서정진 회장을 이을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서진석 대표는 2021년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등 그룹사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습니다. 서정진 회장은 아직까지 경영 승계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유력한 후계자인 서진석 대표의 지분 승계가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죠. 앞서 서정진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서정진 회장은 2021년 65세를 맞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당시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완벽한 답은 아닐지 몰라도 유사한 답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서정진 회장의 소유와 경영 분리 의지는 은퇴 2년 만에 다시 경영에 복귀하면서부터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셀트리온 합병 당시 서진석 대표가 경영사업부 총괄과 이사회 의장직을 겸직하자 오너 경영 체제 굳이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죠. 서진석 대표는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글로벌 투자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 전략을 소개하면서 유력 후계자로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여기에 서정진 회장은 2년의 임기 종료 이후에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사내이사이자 이사회 공동 의장으로 연임하며 강력한 오너 경영 체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서정진 회장의 연임 행보가 승계를 염두한 오너 경영 체제 공고화가 아니냐는 지적에 셀트리온 측은 "글로벌 현장에서 최고 경영진의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서정진 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오른쪽)과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총괄 대표이사가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25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셀트리온)
서진석 대표 첫 셀트리온 자사주 매입 속내는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서진석 대표가 셀트리온 주식 495주를 매입해 2세 경영 승계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서진석 대표는 셀트리온 주식 495주를 주당 20만2000원에 장내 매입했습니다. 현재 서진석 대표가 가지고 있는 셀트리온 지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추가로 지분을 매입해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죠. 표면적으로는 책임경영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취득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창업주 2세의 첫 자사주 매입을 두고 승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특히 셀트리온헬스케어와 합병 이후 서진석 대표의 경영 보폭이 넓어지는 시점에 자사주를 처음으로 매입한 것은 경영 승계 신호탄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와 합병으로 출범한 통합 셀트리온에서는 3인의 각자대표 전문사업 총괄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우성 부회장과 김형기 부회장은 각각 제조개발사업부와 글로벌판매사업부를 서진석 대표는 경영사업부 총괄을 맡고 있죠. 이 밖에도 서진석 대표는 셀트리온홀딩스와 셀트리온제약의 사내이사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셀트리온스킨큐어의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동시에 역임하며 주요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서진석 대표는 지난해 8월 셀트리온과 합병이 무산된 셀트리온제약에서는 서정진 회장과 함께 공동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통합 무산 이후 셀트리온제약은 신성장 동력을 근간으로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셀트리온제약의 누적 실적을 살펴보면 성장이 정체돼 있습니다. 공시에 따르면 셀트리온제약은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6.6% 증가한 3422억5363만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3.4%, 23.3% 감소했습니다. 셀트리온제약은 모기업인 셀트리온에 매출 의존도가 높고, 연간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도 2~3%에 머물러 있어 단기간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현재 셀트리온제약이 보유한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도 원발성 고콜레스테롤혈증, 본태고혈압을 적응증으로 한 화학합성 개량 신약 CT-K2002가 유일합니다.
승계 구도의 중심에 있는 서진석 대표는 구체적인 경영 성과를 통해 후계자로서 능력을 입증해야 하죠. 올해는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CDMO 사업 진출과 바이오시밀러에서 신약 개발사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서진석 대표의 경영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총괄 대표이사가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25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의 메인트랙에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셀트리온)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