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만나고 싶던 최순실과의 조우

탄핵정국에 떠오른 뻗치기의 추억
역삼동 옛 친정 앞서 선 채로 열흘
4년 뒤 구치소서 우연히 마주친 그

입력 : 2025-03-28 오후 12:45:13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다룬 청와대 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당시 난 한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였다. “박근혜에게 문고리 3인방이 살갗이라면 오장육부는 최순실”이라는 말이 청와대 관계자에게서 흘러나왔다. 최순실이란 이름을 알게 된 건 그즈음이었다.
 
지난 2016년 11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호송차 내려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언론사는 서울시 내 경찰서를 6개 권역으로 나눠 담당 기자를 배치하는데, 난 강남(강남·수서· 서초·송파·강동서) 라인이었다. ‘캡’이 내게 서울 강남구 신사동 ㅁ빌딩 앞 ‘뻗치기’를 지시한 이유였다. 빌딩은 최씨 소유로 펜트하우스가 그의 거처였다. 택시 타고 빌딩 앞에 도착했다. 같은 라인의 타사 기자들이 하나둘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두 비슷한 처지였다. 찬바람 불던 빌딩 앞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를 무작정 뻗치고 기다리는 게 나와 타사 사회부 기자들의 일이었다. 
 
1층 카페에서 진을 치고 기사를 썼다. 점심 저녁은 몇 명씩 차례로 때웠다. 언론계 은어로 ‘밥풀’이었다. 한꺼번에 현장을 비웠을 때, 혹시나 취재원이 올지 몰라 번갈아 밥을 먹고 그사이 취재된 사항을 공유하는 것을 뜻했다.
 
기자들이 들끓었던 그 빌딩에 최씨는 오지 않았다. 기자들은 서로 협업하되 경쟁하는 사이였으므로 같이 시간을 죽이다가도 한 명이 사라지면 혹시 홀로 단독 기삿거리를 찾은 건 아닌지 뒤를 캐곤 했다.
 
물론 나도 타사 기자들 몰래 지하 주자창에 들어가 최씨가 타고 다닌다던 아우디8 시리즈가 있는지 훔쳐보곤 했다. 그때마다 관리인은 나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비좁은 계단을 기어 올라가 최씨 집앞 현관문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입김을 불어가며 텔레그램 따위로 면피성 보고를 했다. 1주일이 넘도록 최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당시 최씨 소유였던 ㅁ빌딩.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던 이 빌딩은 이후 매매가 이뤄졌다고 한다. (사진=카카오거리뷰 갈무리)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뻗치기 장소를 옮겼다. 기자들이 드글거렸던 곳에 최씨가 나타날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간 역삼동 다세대빌라는 1990년대 매매가 이뤄진 아버지 최태민 소유 건물이었다. 최순실에겐 과거 친정이었던 셈인데 주인이 바뀌었지만 밑져야 본전으로 찾아간 곳이었다.
 
타사 기자들은 없었다. 혼자였다. 거주자를 따라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역시나 현관문에 귀를 댔다. 들리는 건 두근두근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건너편 반지하 주차장에서 선 채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그를 만나면 물어볼 질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열흘 동안 밤늦도록 그 집 앞을 서성였다. 최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뻗치기를 하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또다시 탄핵 정국을 맞이한 오늘, 천둥벌거숭이처럼 좌충우돌한 겨울날의 뻗치기가 떠올랐다. 박근혜 집권 2년차였던 그때 취재는 쉽지 않았다. 국정 농단의 냄새는 진동했지만 진실은 좀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좀 더 오래 뻗치기를 했더라면 최씨를 마주쳤을까. 마주쳤다면 사태가 달라졌을까.
 
그로부터 4년 뒤인 2018년 7월, 그토록 만나고 싶던 최씨를 조우했다. 교도관 체험을 위해 1주일 동안 서울동부구치소를 드나들던 때,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받던 최씨를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날 그는 외부 병원 진료를 위해 수의를 입은 채 여자 교도관의 계호에 따라 호송차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작았는데 눈빛이 날카로웠다. 무당의 눈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지난 1월, 대전경찰청 앞에서 열린 진보당 대전시당 주최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 기자회견 중 정현우 시당위원장이 수의를 입은 윤석열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진보당 대전시당)
 
“잘 지내시죠?”
“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교도관으로 알았을 터였다.
“지금 어디 가시는 거죠?”
“….” 옆에 있던 교도관이 귀엣말로 만류했다. “기자님, 자꾸 이러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그렇게 최씨는 호송차에 올라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쥐락펴락했다던 최고 실세의 초라한 말로였다. 사실 그를 만나면 던질 마지막 질문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였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그에게 이 물음을 던지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됐다.
 
윤석열이 내란죄로 재수감된다면, 그때 다시 교도관이 돼 그의 파렴치하고 가련한 몰골을 묘사하고 싶다. 그땐 잊지 않고 “감빵에서 평생 국민들께 참회하고 살라”는 일갈을 살뜰히(!) 건넬 작정이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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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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