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나비효과…재계, 가격인상 ‘만지작’

LG전자 "감내 수준 넘을 시 가격인상 검토"
"3개월 재고" 현대차, 2분기 가격인상 전망
재계, 관세 대응 위해 미 생산 전략 구체화
관세 사정권 안 기업도 정책 변동성 "주시"
"현지 생산 압박 강화…산업공동화 피해 우려"

입력 : 2025-04-25 오후 3:47:55
[뉴스토마토 배덕훈·박혜정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1분기 무난한 성적표를 받은 국내 대기업들은 호실적에 고무되기보다 관세 부과가 본격화될 2분기 대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재계는 당장은 관세 부과에 따른 부담을 감내한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울러 가격 인상 카드와 함께 근본적으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는 미 현지 생산 확대 방안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5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066570)는 관세 영향에 따른 판매가격 인상을 검토 중입니다. 당장은 관세 영향이 크지는 않지만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대응 방안으로 가격 인상 카드를 고민 중에 있는 것입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취재진을 만나 운영 효율화 등을 통해 (관세를)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수용할 것이라며 관세 인상 폭이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미국향 가전제품의)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국가별 상호관세는 유예하고 전 세계 국가에 10% 기본 관세만 부과한 상태입니다. 이에 LG전자는 운영 효율화 및 재고 순환 등 내부 역량을 통해 먼저 감당하되 그럼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제품 가격 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주완 LG전자 CEO가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전자는 이미 가격 인상과 관련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이날 실적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김이권 HS본부 경영관리담당 전무는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주요 유통가와 이미 협의를 마쳤다고객사와의 판매가격 인상에 대한 전체 로드맵은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5%의 품목 관세를 적용받는 현대차그룹도 일단 재고 차량을 활용해 관세에 대응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만, 재고 소진 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현대차(005380)는 현재 북미지역에서 3개월 판매량이 넘는 완성차 재고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자동차 부품은 이보다 더 많은 재고를 확보했다. 일정 부문은 재고 물량으로 (관세 타격을) 만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차는 앞서 재고 차량을 최대한 활용해 62일까지 현지 판매 차량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이란 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이날 이후 가격 인상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현대차 양재사옥 (사진=현대차)
 
미 현지 생산 확대시 부품 조달 방안
 
특히 현대차는 미국 외 시장에서 생산해 온 완성차 물량을 미 공장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미 판매용 투싼은 HMMA(미국 앨라배마 공장)로 돌리고 HMMA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로 넘기는 방안을 시행 중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생산하는 미 수출 물량도 다른 곳으로 이관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중입니다.
 
현지 생산 확대를 위한 부품 조달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이 본부장은 “관세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미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해 부품 업체를 발굴·점검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빨리 진행이 가능한 패스트트랙 아이템을 선정해 관세 절감 효과를 최대한 앞당길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LG전자도 미국과 멕시코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유연한 생산체계에 기반해 관세에 대응한다는 방침입니다. LG전자는 미 테네시 공장의 세탁기, 건조기 생산 물량을 확대해 미 가전 매출의 10% 후반까지 커버한다는 계획입니다. 다만, LG전자는 미 공장 증설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입장입니다조 CEO는 미국 생산기지 건립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우선 생산지 변경이나 가격 인상 등 순차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포스코그룹 '철강, 이차전지 협력 양해각서 체결식' (사진=포스코)
 
관세 대응을 위해 맞손을 잡은 철강업계 1·2위 포스코(POSCO홀딩스(005490))와 현대제철(004020)도 미국 내 제철소 건립을 관세 대응책으로 마련한 상황입니다포스코 관계자는 미국 제철소 공동 투자를 통해 글로벌 통상 환경 위기에 대응하고 북미 철강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했고,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제철소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수익·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고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해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했습니다.
 
관세 나비효과에 노심초사
 
당장은 관세폭탄을 피했지만 사정권에 포함된 기업들도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을 준비 중입니다. SK하이닉스(000660)인공지능(AI) 서버는 상대적으로 관세로 인한 수요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당사는 고객과 협력을 바탕으로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부 고객은 단기적인 공급 풀인(pull-in) 수요를 앞당기는 움직임도 있지만 글로벌 고객들은 전반적으로 협의 중이던 메모리 수요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사진=연합뉴스)
 
관세 폭탄의 나비효과가 현실화하면서, 미 현지 생산이 늘면 국내 생산이 줄어 불경기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관세 리스크가 장기화할수록 미 현지 생산 압박도 강화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산업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어 일자리 문제 등 국내 피해가 우려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격 인상 도미노가 결국 국내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수요가 급등하는 등 특별하게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수요가 정체될 것으로 보이고 원자재 값 등 비용 상승 요인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가격 인상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배덕훈·박혜정 기자 paladin7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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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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