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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29일 11:1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매출 실적이 미미한 기업이라도 우수한 기술력만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제도다. 기술 기반 기업의 자금 조달을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상장 과정에서 과도하게 낙관적인 실적 전망이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장 이후 실적이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개별 기업의 특수성과 산업 구조적 변수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장이 추진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IB토마토>는 기술특례상장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상장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기술특례상장 심사 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요구하는 기류가 강화되면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본업과 무관한 분야에서 매출을 끌어오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상장 평가기관들이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대한 매출 요건을 대폭 강화한 데 따른 결과다. 다만, 매출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기술특례상장의 본래 취지인 기술력 강화가 퇴색되고 기업의 기술 경쟁력마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제도의 취지에 맞게 과도한 매출 요건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한국거래소)
'현재 매출'에 초점 맞춘 시장성 검증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보유 기술과 관련성이 적은 부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해 매출을 늘리려고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기술특례상장 평가 기관들이 상장 심사 과정에서 상장 전 매출을 유심히 들여다본 영향으로 풀이된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상장 후 예상치를 밑도는 매출을 기록하며 주가 하락이 발생하자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시장성 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성 요건은 기업이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지, 혹은 보유 기술이 향후 얼마만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상장 준비 기업이 사업과 무관한 영역에서 매출을 늘리는 이유는 시장성 요건의 초점이 기술 잠재성에서 현재의 매출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소재 기업 기준 연간 매출이 최소 100억원은 돼야 상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한 바이오 기업의 경우 기술계약 체결 사례 등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는 기업 다수가 매출 기반이 부족한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
한국거래소가 상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매출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업계에서는 경험을 통해 대략적인 매출 기준을 추정하고 있다. 이에 정확히 기술특례상장 요건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올해 들어 매출 등 시장성 요건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현재 매출을 시장성 요건으로 보고 있지만, 기술특례상장 취지와 동떨어진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술특례상장제도 취지는 매출은 적지만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상장 시장에서 원활히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해 기업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 기술의 잠재력을 펼치게 돕는다는 데 제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재 매출을 들여다보는 기조가 강해지면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도 보유 기술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매출을 늘릴 방안에 골몰해야 하는 실정이다. 잠재력보다 현재의 매출이 중요한 심사 요소가 되면서 일각에서는 기술특례상장이 요건만 완화한 일반 상장과 다를 바 없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존 상장기업도 매출 확대 급급…기술 경쟁력 저하 우려
현재의 매출을 강화하는 기조로 인해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은 기술력에 대한 청사진보다는 당장 매출을 확대할 방안에 역량을 쏟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미 상장에 성공한 기업에도 나타난다. 일부 기업의 경우 기술이 매출로 발생하는 시기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을 통해 매출을 늘려야 상장 유지 요건을 맞출 수 있다. 이에 기술특례상장의 취지에 맞는 회사 운영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다만, 본업 외 사업을 통해 외형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기술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규모가 작은 기술특례기업이 온전히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돈이 되는 사업에 역량을 쏟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오와 우주 등 성공하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기대되지만 실패 가능성도 상존하는 산업일수록 기술력과 연관이 적은 영역으로 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상장한 AI(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의료기기 업체인 네오펙트는 상장 당시 연간 매출에서 의료기기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0.4%(45억원)에 달했으나, 지난해 말 AI 의료기기 매출 비중은 55%(116억원)로 줄었다. 대신 장기요양서비스, 금융투자업, 물류업 등 본업 외 사업의 매출 비중이 45%에 달했다.
아울러 바이오 기업 압타바이오는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려동물용품 사업에 진출했다. 기술 연구개발이 긴 시간을 요구하는 탓에 기술력 기반의 매출 도모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매출이 1400만원대에 불과했던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개정을 통해 부동산업 등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추가했다. 우주 발사체 사업에서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 매출 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 기업 모두 본업과 무관한 사업으로 매출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본업 외 사업으로 매출 요건 충족에 집중하는 탓에 고유의 기술 경쟁력으로 승부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시장성을 평가하는 관점이 현재의 매출에 집중되면서 기술특례상장 시장성 평가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기술특례상장에서 기술이 본질이 돼야 하지만 매출 확대를 위해 매출 확대용 사업을 하는 것은 기술특례상장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