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치 풍자 영화 <더 캠페인(The Campaign)>은 우리 정치의 현실을 마치 예언하듯 비춘다. 영화 속 두 후보는 정책보다 상대를 흠집내는 데 몰두한다. 실언과 스캔들, 막대한 자금과 전략가의 연출로 평범한 인물이 ‘상품’으로 포장된다. 정치는 진흙탕이 되고, 유권자는 자극적인 말과 가짜 뉴스에 휘둘린다. 이 와중에 후보는 항변한다. “사람들이 이 일을 완전히 맥락에서 벗어나 받아들이고 있어(People are taking this thing entirely out of context).” 이 대사는 놀랍게도, 이번 한국 대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책의 본질은 사라지고 맥락은 실종된 채 일부 발언만이 왜곡·확대 재생산되었다. 후보자의 정치철학은 증발했고 자극적인 장면과 문장 몇 줄이 선거를 지배했다. 언론은 맥락을 자르고 SNS는 그 파편을 회전톱처럼 확대했다. 유권자는 진실보다 이미지에 노출되었고 정치의 본래 기능은 뒷전이 되었다.
결국 선거는 ‘누가 더 잘 포장하느냐’의 경쟁이 되어버렸다. <더 캠페인>이 보여주는 정치의 민낯은 한국 대선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정치는 본질이 아니라 맥락이 사라진 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출범했다. 지금이야말로 대선을 잠시 잊고 국민이 진정으로 듣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할 때다. 국정이 맥락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거창한 개혁 수사나 비현실적 성장이 아니라 일상을 되찾고 정치가 본래 역할로 돌아오는 것. 민생과 상식의 회복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국가 과제다.
국민은 어두운 증오와 미움을 걷고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 진정성 있는 국정을 원한다. 그러나 많은 후보들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권영국 후보만이 비교적 정책 선거의 기본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방송 토론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며 정책 대안에 집중했다. 대중적 성과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분명 쇼가 아닌 맥락을 복원하려 했다.
문제는 대선이 끝난 뒤에도 네거티브와 정쟁이 ‘연장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끝났고 국정은 시작됐지만, 여의도는 여전히 ‘대선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대로 된 ‘맥락’인가. 지난해 12.3 내란의 토양이었던 계층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화해와 존중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를 외면하는 국정은 출발부터 실패다. 신정부는 특정 정파의 정부가 아니라, 협치와 연합의 정신으로 새 국정의 판을 열어야 한다. 권력자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 집단 지성과 전문성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 윤석열 정부의 오만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는 다시 맥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정책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심의 설계’가 되어야 한다. 둘째, 국정은 협의와 책임의 구조를 갖춘 제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 셋째, 언론과 SNS를 통한 국민 소통은 발언의 맥락을 함께 제공하며 진실의 구조를 존중해야 한다.
섬기고 또 섬기는 겸손한 정부. 그것이 지금 이 나라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언어다. 홍보가 아닌 공감, 포장보다 실질이 우선이다. 정치란 작은 희망이라도 제대로 만드는 일이며,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론의 장을 여는 일이다. 실천적 공감의 철학으로 국정이 운영될 때, 국민은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란을 극복한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 그들은 다시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는 새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우리는 더 이상 맥락 없는 정치에 지배당할 수 없다. 정치는 맥락을 복원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되찾고, 국민의 삶을 회복할 수 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