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내달부터 민간아파트에 적용되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설계 의무화 제도로 공사비 상승과 분양가 인상 압력이 높아질질 전망입니다. 건설업계에서는 당초 정부가 추산한 추가 비용보다 2~3배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시공비가 분양가에 전가되면서 수요자의 부담도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은 ZEB 5등급 수준 설계가 의무화됩니다. ZEB 5등급 수준 설계 의무화가 도입되면 에너지 자립률 13~17%를 맞춰야 합니다. 에너지 자립률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효율의 기계 설비뿐만 아니라 단열, 창호 등 건물 내 에너지 유출을 막기 위한 기밀 성능 향상을 위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정부는 5등급 수준을 충족하려면 주택 건설비용이 가구당 약 130만원(84㎡기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건설사는 단지마다 조건이 달라 일반화하기 어려우나 정부가 제시한 추산치보다 비용 상승이 최대 3배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고층 공동주택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고층의 경우에는 옥상 태양광 설치 면적 확보가 어려워 입면 태양광 시공 시 추가 공사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에너지 저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설계 변경 시 지자체 협의·승인 등의 행정절차가 증가하고, 추가 공사비와 시공 리스크 역시 늘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어들면서 분양가 인상을 통해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민간아파트의 ㎡당 평균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575만5000원으로 2016년과 비교해 두 배 넘게 올랐습니다. 서울은 ㎡당 분양가가 1376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17%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인건비와 원자잿값 등 원가가 오르면서 공사비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로에너지 의무화가 시행되며 부담이 크다는 것이 업계 주장입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뉴시스)
중소 건설사 부담 커…"실효성 높은 인센티브 필요"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 여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은 신기술 개발을 통해 공사비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지만 중소 건설사는 기술력이 중요한 ZEB 인증에서 기술 개발과 시공 부담이 커 준비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제도 도입에 따른 업계의 건축비 상승분 우려는 과장돼 있으며, 연간 에너지 비용 22만원을 절약해 6년 정도면 추가 공사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건축물 생애주기 전반의 비용 절감과 주택 수요자 만족도 등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또 해외에서는 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이 부동산 가치 평가의 핵심 지표로 작동하고 있는 만큼 향후 에너지 생산성이 주요한 기준으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황규완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고효율 자재 생산 증가, 기술 발전으로 태양광이 향상하면 규모의 경제 등으로 건축비 회수 기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늘어난 전기 수요를 자체 생산한 전기로 충당하면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으며, 전반적인 비용을 고려했을 시 친환경 건축물의 수익성이 월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건설업계에서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을 늘리기 위해서 실효성 높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취득 시 현재 용적률이나 높이 제한 완화,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지고 있지만 타 인증과 중복되는 경우가 있고, 이마저도 ZEB 5등급 인증에 준하는 최소한의 설계 기준(에너지 자립률 13~17%)만 지키면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주요 건설사들은 에너지 절감 기술을 개발해 아파트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2019년 준공한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1차'에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을 적용해 국내 최초로 ZEB 5등급을 획득했습니다. 앞서 레이크송도는 ZEB 인증 시에만 주어지는 용적률 상향·세제감면 등을 활용해 추가 공사비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GS건설은 고성능 단열재, 기밀 성능 향상, 고성능 창호, 고효율 LED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시스템 등 다방면으로 에너지자립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역별 에너지 성능 분석 및 신재생 에너지 관련 차별화 기술을 기반으로 ZEB 지역별·등급별 최적 설계 가이드라인을 구축 완료했습니다. DL이앤씨는 건축환경연구센터를 설립해 신재생 기술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