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망망대해 지평선

하정초고·조행일록을 통해 본 '물줄기'
배 열두 척 이끌고 서울로 향한 '조운선단'
삶의 터전 한강, 담수·해수의 공존 공간
경제 마중물 역사…새 정부 '불황과 일전'

입력 : 2025-06-09 오전 9:03:5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중강고각응조명 십이루선차제행
진일호풍기각전 접천장해범두횡
성당창사유당진 영운관명야불경
군차막언위도거 오신자유장왕령
 
"강에서 북 치고 호각 부니 조수 소리 응하는 듯, 열두 척 배들이 차례차례 조운을 떠난다. 날마다 순풍이 불어 깃발을 옮겨 가고, 하늘에 접한 긴 바다에 돛 머리 비끼리라. 성당창의 일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영운관 관직이 맡기엔 가볍지 않구나. 그대들은 위험한 길 간다고 망하지 말게나. 우리의 몸은 절로 왕령에 의지하고 있으니." 
 
이는 조선시대 함열(현 전북 익산 일대) 현감이자, 조선 후기 문인 임교진(1803~1864)의 『하정초고』에 나오는 시입니다. 『하정초고』는 임교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3년 편집한 시문집입니다. 『하정초고』에는 19세기 금강 유역에서 이뤄졌던 조운에 대한 견문·체험·풍경·감회를 형상화한 작품이 수록돼 있습니다. 
 
그는 지방 조세를 서울까지 배로 운반하는 조운 과정에서 시나 일기, 잡문 등의 형태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특히 첫 조운을 시작하며 쓴 시에는 국가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여러 위험을 감수한 조선시대 관리의 충직한 마음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 전시를 통해 본 조선시대 함열(현 전북 익산 일대) 현감이자, 조선 후기 문인 임교진(1803~1864)의 『하정초고』에는 19세기 금강 유역에서 이뤄졌던 조운에 대한 견문·체험·풍경·감회를 형상화한 작품이 수록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더욱이 전라도 함열 현감 겸 성당창 팔읍조세영운관이었던 임교진이 1862년 11월~1863년 5월 세곡 징수부터 한양 광흥창까지의 조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만3000여석의 곡물 등 세곡을 열두 척의 배로 운반하는 노정과 납부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조행일록』은 국내 조운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일기로 통합니다. 
 
19세기 조운 제도와 당시 사람들의 이동 경로, 해상 운송 상황이 생생할 정도입니다. 예컨대 대동여지도로 본 임교진의 조운 선단의 서해 항로를 보면, 19세기 조운선 한 척에는 쌀과 콩을 1000여석 이상 실을 수 있습니다. 
 
당시 임교진은 배 열두 척을 이끌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곡식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육지가 보이는 가까운 바닷길로 다녔고 밤에는 배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바닷물 높낮이 변화가 심하고 숨어 있는 바위도 많아 쉽지 않았습니다. 바닷길만큼이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임교진이 전라도 익산을 출발, 서해와 한강을 거쳐 곡식을 안전하게 서울로 옮긴 기간은 36일로 물길을 따라 삶의 터전을 일궈온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선사시대부터 한강 유역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한강을 통해 세곡의 운반·교역이 이뤄지는 등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한강은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며 담수·해수가 만나는 공존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내륙·해양을 연결하고 물줄기를 슬기롭게 이용하던 지혜는 바다에서 활로를 찾고 세계로 뻗어나간 대한민국의 성장과 궤를 함께해왔습니다. 
 
 
지난 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경제 발전의 마중물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수요 여건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 하반기 세계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회복 기조'를 볼 수 없는 망망대해의 지평선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일부 의식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경제는 이미 외환위기 이상의 비상 경제 상황을 맞았다고 말합니다.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 이상으로 연 2.7%의 성장 가도를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쓸 돈이 없을까요. 세대당 실질 월평균 가처분소득을 보면, 지난 2020년 399만원입니다. 2년 전 384만원, 지난해는 392만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4년 전보다 더 낮아진 겁니다. 
 
물가는 어떤가요. 소비지출에서 식음료와 외식·숙박 비중만 놓고 따질 경우 22%대에서 윤석열정부 들어 23%를 넘기더니 지난해 24%대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1995년(23%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수치입니다. 
 
분기별 성장률도 4분기 연속 '0% 언저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부터는 어떨까요. 하반기 13대 주력 산업 전망은 정보통신기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수출 확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기대주인 바이오헬스, 조선산업은 일시적 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신용데이터(KCD)의 ‘2025년 1분기 소상공인 동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소상공인 1곳당 평균 매출은 약 4179만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12.89% 감소했다. (사진=뉴시스)
 
나머지 자동차, 기계, 철강, 정유, 가전, 이차전지 산업의 침체 국면은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분석입니다. 석유화학의 경우는 하반기 업황 개선을 엿볼 기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행정명령인 비상경제점검 태스트포스(TF)는 '불황과의 일전'입니다. 새 정부는 다가오는 경제 대란을 막아야 할 마중물로 경제의 선순환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늪의 덩어리가 커진 가계부채 문제와 가계소비 난관. 그리고 성장 둔화의 족쇄를 풀어야 합니다. 더욱이 망가진 민생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성과 실질소득 간 격차를 좁히고 사회소득 강화에 주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을끼리 으르렁 거리지 않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시장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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