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일본의 애니메이션 음악가이자 편곡가인 하야시 코바는 향년 80세를 일기로 6년 전 작고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2001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물신' 캐릭터에 담겨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흡사 진흙이 흘러내리는 듯 기괴한 모습을 한 오물신은 전신이 오물 덩어리로 악취를 풍기는 최악의 캐릭터로 기억한다. 낯선 세계로 들어선 주인공 치히로가 온천장 종업원으로 일하며 겪는 분투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첫 손님이기도 하다.
오물신의 악취는 얼마나 최악일까. 나르던 음식마저 썩고 다른 신들까지 피신할 정도니 진오물의 더러움이 장면마다 간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종업원들이 온천장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치히로가 떠맡게 된 오물신. 치히로는 씻겨도 씻기지 않는 오물신과의 힘겨운 고군분투를 벌인다. 오물신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각종 쓰레기와 배설물 따위가 몸 밖으로 배출되면서 끝내 '강의 신'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맑게 정화된 '강의 신'이 감사의 말과 호탕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온천장을 떠나는 장면은 기묘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2001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오물신'. (사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 캡쳐)
오물로 뒤덮여 있던 강의 신이 정화되는 장면을 지난 3년의 시간과 빗대어 보면 느끼는 바가 크다. 경제를 망친 무능을 넘어 내란의 오물 덩어리들이 아직도 활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3년 동안 뒤덮이고 뒤덮인 오물들이 여전히 씻기지 않고 곳곳에 흘러내리고 있는 현실은 아연실색할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세수 예측 오판은 무능의 극치를 넘어 '한 일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 재정의 마중물은커녕 오물만 끼얹진 결과를 불러왔으니 문제점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나마 정권 교체 후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첫발로 추경안이 나왔지만 윤석열정부 예산의 문제점은 아직도 남아 있다. 윤정부의 예산은 건전하지 않은 긴축 재정으로 재정의 역할을 방기한 지적을 받고 있다. 소득 재분배, 자원 배분, 경제 발전·안정이라는 재정 기능의 역할을 외면했다. 민생의 어려움과 최악의 경제 지표에도 건전 재정을 주장하며 회피했기 때문이다. 되레 경제 양극화 심화에도 부자 감세가 이어졌고 대규모 세수 결손 등 나라의 곳간은 비어갔다. 결국 올해 세수도 10조원 넘게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니 3년 내리 경천동지할 일이다.
문제는 내년 예산안의 편성 지침이 그대로라는 점이다. 즉, 전 정권의 오물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재정법상 차기 연도 예산안 편성 전에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한 정부 내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 재정 운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나라의 명운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지난 4월14일 서울 공관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 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하지만 12.3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대통령 공석·직무대행 체제를 겪는 과정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사실상 열리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판단해 2026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방향이 없는 전 정부의 예산안인 셈이다. 이재명정부 5년의 청사진을 그릴 국정기획위원회가 '7월20일 전후'를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세재 개편안도 7월 말경 확정을 예고하고 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18일 "대통령 주재 재정전략회의가 보통 늦어도 5월 중 개최된다"며 "이번엔 대통령 파면과 대선으로 7월로 미뤄졌다. 최대한 주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맞추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허나 무엇을 담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현 정부의 기조와 같이 민생·경기 안정화를 위한 선도적 재정 역할은 필수로 여겨진다. 더욱이 인구위기 지방소멸 위기 대응, 저출산 대응 예산의 재분류, 공공임대주택 예산의 정상화, 아동수당·상병수당 확대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가의 장래와 맞닿아 있는 인구 위기,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주체는 중앙정부라는 사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윤 정부에서 대폭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건설 예산을 정상화해 주택난을 해결하고 주거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과도하게 부풀려진 저출산 대응 예산의 실태 파악을 통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예산의 배분을 위한 기초 다지기가 요구된다"며 "아동수당의 대상과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자영업자 및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상병수당 제도를 단계적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정부가 30조5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