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여보, 우리 소화제도 필요하지 않나. 여기 소화제 싼데 좀 사갈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0일 오후 경기 성남시 고등동은 약국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량과 안내 직원의 움직임을 빼면 고요했습니다. 국내 첫 창고형 약국으로 지난달 10일 문을 연 이 약국 안에는 동네 약국보다 싼값에 파는 상비약을 찾는 이들로 붐볐습니다.
경기 성남시 고등동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430㎡(약 130평) 면적의 약국에선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반려동물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약들이 진열된 사이에는 바퀴 달린 카트를 몰고 가면서 평소 자주 구매했던 품목의 가격을 확인합니다.
가족 단위로 이 약국을 찾은 대부분의 소비자들 가운데 홀로 매대를 들여다보던 중년의 남성이 휴대전화를 놓지 않습니다. 부인으로 추정되는 통화 상대방에게 여러 약의 이름과 가격을 대면서 구매 의사를 묻는 것을 보니, 동네 약국에서 자주 사서 구비해두던 약들을 사려던 요량으로 보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 부부는 영양제가 쌓인 매대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소비자들이 이 약국을 찾는 이유는 가격입니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500㎎ 제품(30캡슐) 가격은 700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보통 약국에서 1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3000원 더 싼 가격입니다.
카트를 채운 이들은 반려동물 의약품과 비타민 등이 진열된 한쪽 벽면으로 길게 늘어서 카운터로 향합니다. 중간중간 다른 소비자들과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이동 경로를 확보하는 직원들의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가로로 길게 마련된 계산대에는 흰 가운을 입은 약사 7~8명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손님이 현금이나 카드를 내밀면 약 종류를 확인하고 누가 복용할 건지 묻고 간단한 정보도 제공합니다.
경기 성남시 창고형 약국을 찾은 소비자들이 비타민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개점 이후 '새로운 실험'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창고형 약국이지만 비판의 시각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3일 △약사의 전문성과 직능을 위협하는 구조 △법과 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부정하는 편법 시도 △의약품 유통시장 왜곡과 오남용 우려 △대형 자본으로 인한 보건의료 체계 붕괴 우려를 이유로 창고형 약국에 우려 섞인 시선을 던졌습니다.
대한약사회가 명확한 논리 구조에 기반해 비판 의식을 보인 반면 약사들과 약대생들이 가입한 커뮤니티에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 중에는 이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들을 겨냥한 협박성 댓글도 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비난 수위가 거세지자 약사들 중 몇몇은 일을 그만뒀고, 채용이 약속됐던 약사들은 약국에 나오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국 약국 측은 협박성 게시물을 작성한 20여명을 고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정두선 메가팩토리 대표 약사는 "약사들이 복약 지도를 하고 마지막에 카운터에서 맞는 구조인데 일부 단체들의 약사들에 대한 신상 파악 때문에 약사들을 구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문제가 해결돼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복약 지도 상담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