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기업들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면서 동시에 지주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의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의 마지노선으로 공익재단이 존재감을 드러내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익재단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됐더라도 오너 일가나 기업 집단의 사익이 아닌 공익적 목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본지 기획 시리즈에서는 유한양행 '유한재단', 녹십자그룹 '목암생명과학연구소', '미래나눔재단', '목암과학재단', 대웅 '대웅재단' '석천나눔재단', 종근당 '고촌재단', 한미그룹 '임성기재단' '가현문화재단' 등 5대 제약사가 소유한 공익재단이 그룹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특히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공익재단을 지렛대로 삼아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지적이 타당성을 갖는지도 검증했습니다. (편집자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미약품 사옥. (사진=한미약품)
경영권을 두고 오너 일가 간 첨예하게 대립했던 한미약품그룹은 분쟁 당시 공익재단이 화두로 부상했고, 현재까지도 지배구조 중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공익법인은 원칙적으로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즉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은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정거래법 제25조 제2항에 따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의 공익법인은 계열회사 주식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예외가 있죠. 국내 5대 제약사 경우 자산총액이 10조원이 넘지 않아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캐스팅보트로 주목받았던 공익재단은 임성기재단과 가현문화재단입니다. 경영권 분쟁 종식 이후 소폭의 지주사 지분율 조정이 있었지만, 여전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배구조 중심에서 계열사 장악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말 가현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3.02%, 임성기재단은 3.07%로 두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율은 총 6.09%입니다.
최근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은 대주주 4자 연합이 안정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재단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는 16.43% 지분을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입니다. 신동국 회장 측 우호 지분인 한양정밀이 가지고 있는 지분 6.95%까지 합하면 총 23.38%입니다. 그는 지난해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오너 일가 간 분쟁이 송영숙 회장 진영을 지지했던 대주주 4자 연합의 승리로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개인 최대주주로 그룹 지배구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공익재단, 지배구조 '캐스팅보트' 주목
현재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은 23.38% 지주사 지분을 보유한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 지분은 10.95%,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최대 출자자로 있는 킬링턴이 9.53%의 지분을 가지고 4자 연합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송영숙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20.36%입니다. 신동국 회장 지분율과 비교하면 3.02%포인트 차이로 오너 일가 지분이 적습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 당시 송영숙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 지분을 합산한 6.09%을 합산하면 오너 일가 지분율은 26.45%로 사실상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은 줄곧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임주현 부회장 측 진영에서 모녀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한미그룹의 공익재단이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취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임성기재단과 가현문화재단은 각 재단 이사회를 통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생명공학과 의약학 분야의 연구사업을 확산하기 위해 2021년 설립된 한미약품그룹 공익법인 임성기재단은 연구 과제에 활동비와 인력을 지원하고, 연구자 간 교류와 연구 결과 확산을 위해 학술대회와 포럼, 심포지엄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연간 총 4억원의 범위 내에서 희귀난치성질환 연구 과제를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근육골격계통 및 결합조직과 신경계통의 희귀질환 병리기전을 규명하고 신규 치료 타깃 및 후보물질 발굴, 원천기술 개발부터 치료 임상 단계까지 전 주기에 걸친 연구를 지원한다는 방침인데요.
임성기재단, 공익목적사업 비중 64.4%
임성기재단은 매해 10억원대 자금을 공익목적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임성기재단이 지출한 총 사업비 17억7610만원 중 64.4%를 차지하는 11억4313만원을 공익목적사업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전년도는 전체 사업비 11억9995만원 전액을 공익목적사업 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2022년에는 전체 사업비 16억679만원에서 75.1%에 달하는 12억702만원을 공익목적사업 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또 다른 공익법인인 가현문화재단은 송영숙 회장이 2002년 한국 사진 문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다양한 분야의 공익 문화예술 사업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입니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와 계열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현문화재단은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 개관을 시작으로 한국사진문화연구소, 한국사진아카데미, 전시, 출판, 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송영숙 회장이 2020년 2월까지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한미그룹 관계자는 “가현문화재단은 한국 문화예술의 발전과 사진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전시와 작품 수집, 작가 지원 사업, 출판,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공익 문화예술 사업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며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의 암각화’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2023년에 개최하면서 유네스코 등재와 맞물려 해당 전시의 문화사적 가치도 함께 조명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