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3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유럽의 녹색 전환 경쟁을 지원하고, net zero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270억 달러 규모의 그린 딜 산업 계획을 발표하는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 (사진=EU)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데 반해, ‘기후비상사태’는 즉각적이고 야심찬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긴급성을 함축합니다. 이 용어의 전환은 단순히 언어적인 유희를 넘어, 정치적 행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력을 가시화하고,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관료주의적 절차를 뛰어넘는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2019년 11월 28일, 유럽의회는 429 대 225의 압도적인 표차(기권 19표)로 ‘기후 및 환경 비상사태’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2019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직전,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파리 협정에서 탈퇴를 확정한 지 3주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제 기후 행동의 리더십을 재확인하려는 EU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행보였습니다.
결의안의 핵심 내용은 지구 온난화를 1.5°C로 제한하고 생물다양성의 대규모 손실을 막기 위한 '즉각적이고 야심찬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집행위원회, 회원국 및 모든 글로벌 행위자들에게 긴급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모든 관련 입법 및 예산 제안이 1.5°C 목표에 부합하는지 평가하고, 농업, 무역, 교통, 에너지 등 현재의 연합 정책 간 불일치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의회는 자체적인 탄소발자국 감축을 위해 무배출 차량으로의 교체 등 내부 조치를 채택함으로써, 선언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병행했습니다.
그 당시 일부 녹색당 의원들이 이 선언을 'PR-스턴트(PR-stunt)'로 비판하고, 중도 우파인 유럽국민당(EPP)이 '비상사태'라는 용어 자체에 반대하는 등 회의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비상사태’ 선언이 제공한 정치적 명분은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선언 직후인 2019년 12월, 유럽 집행위원회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하는 유럽 그린 딜을 신속하게 발표했고, 이는 2021년 유럽 기후법 제정을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비상사태’라는 언어적 상징은 행동의 즉각성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동력을 부여했으며, 이는 기념비적인 정책 로드맵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주요 정책 변화 및 목표
2019년 11월 기후 및 환경 비상사태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유럽연합은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변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에너지, 운송, 산업, 농업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경제 및 사회 변혁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입니다. 유럽 그린 딜은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에 따른 국제적 의무를 실질적인 국내 법제도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지속가능성을 EU 정책의 핵심 가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기후비상사태 선언 이후 분야별로 다양한 정책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성 개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업 분야에서는 철강, 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순환경제 전환을 지원하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정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그린 딜 산업계획을 제안했습니다. 교통 분야에서는 2050년까지 운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감축하기 위해, 화석연료 보조금 제도를 종료하고, 해운 및 항공 부문을 배출권거래제(ETS)에 편입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비료 사용량을 20% 줄이고, 유기농 경작지를 25%로 확대하는 등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기후 및 환경 정책 변화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고 '유럽 기후법'으로 법제화했습니다. 또한, 'Fit for 55' 입법 패키지를 통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최소 55%로 상향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정책 수단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기업의 친환경 기술 투자와 전환을 유도하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은 환경 규제가 느슨한 역외 국가의 제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탄소 누출'을 방지하고,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노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경제 성장과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동시에 달성하는 성공적 탈동조화(Decoupling)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EU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부터 2022년까지 31%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EU의 GDP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이는 기후 행동이 반드시 경제적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유럽연합의 기후 정책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여러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CBAM과 같은 정책은 EU 내 기업들에게 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무역 대상국인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불공정한 무역 장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럽연합이 직면한 한계와 도전과제
유럽연합의 기후 비상사태 선언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유럽 기후법’과 ‘Fit for 55’ 패키지와 같은 명확한 법적 목표와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법제화를 통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인 점은 긍정적인 평가의 근거가 됩니다. 유럽연합의 경험은 기후 행동의 리더십이 단순히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CBAM을 둘러싼 국제 무역 마찰, 그리고 정책 이행 과정에서의 사회적, 정치적 갈등은 여전히 중요한 해결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경험은 기후 정책이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국제 협력, 무역, 경제,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도전임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든 ‘기후비상사태’든, 그 선언의 진정성은 ‘용어의 선택’이 아니라 ‘선언을 뒷받침하는 실천’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European Green Deal(사진=EU-ASEAN)
임삼진 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