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KDB생명보험 자본잠식을 기점으로 사모펀드(PEF) 업계의 보험사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하는 양상입니다.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 인수·합병(M&A) 시장에 쌓인 매물도 한동안 인수 대상자를 찾기 힘들 전망입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인수 대상 기업 목록에서 보험사를 일제히 제외시키며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험사 패싱' 기조는 최근 한국산업은행 자회사 KDB생명의 2개 분기 연속 자본잠식 소식이 알려진 이후 더욱 굳혀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이제는 보험사 인수 못 한다"며 "이미 많은 운용사들이 M&A 안건을 검토할 때 보험사들은 들여다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수년간 코로나19 팬데믹과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 등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 등으로 MG손보, KDB생명, 롯데손보 등 잇단 투자 부진 전례가 누적되자 보험업 경영 한계를 통감하게 된 이유가 컸습니다.
한때 보험업권 M&A의 성공 신화로 꼽히는 MBK파트너스의 ING생명(현 신한라이프) 인수를 바라보고 보험사 인수 후발 주자로 뛰어든 사모펀드들이 많았습니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네덜란드 ING그룹으로부터 ING생명(100%)을 1조84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후 2015년 자산 기준 30조원으로 생명보험업계 5위에 안착해 2018년 신한금융지주에 2조2989억원을 받고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지분 59.15%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MBK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이듬해부터 코로나19 팬데믹과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 등 보험업권 경영환경에 변화가 일었는데요. 이 시기 후발 주자들은 회계처리 변동에 따라 보험부채 인식 금액이 늘면서 건전성 약화, 손해율 급증에 따른 실적 부진에 허덕였습니다.
다른 사모펀드 관계자는 "회계기준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당국 가이드라인도 상황에 닥쳐 몰아치는데, 막상 반영하면 겉으로 보여지는 지표들이 하락하고 주가는 날뛰다 보니까 사모펀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보다라는 인식들이 많이 생겼다"고 전했습니다.
MBK에 대해서도 보험업 경영 본연에 집중해 수익을 실현했다기보단 저평가 기업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려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케이스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을 가까스로 피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입니다. 애당초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는 '장기 안정성'을 지향하는 보험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귀결되는 배경입니다.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입니다. 당국은 경영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경고 차원에서 적기시정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론 해당 조치를 받은 보험사는 곧장 자본조달 창구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국이 자본력이 떨어지는 회사라고 ‘딱지’를 붙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적기시정조치는 금융당국이 건전성이 악화된 금융기관에 개입해 단계적인 개선을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행정조치입니다. 총 5등급으로 나눠 평가되는 경영실태평가(RAAS·라스)에서 4등급(취약) 이하로 평가되면 받는 처분이며 경영개선권고, 경영개선요구, 경영개선명령 등으로 구분됩니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 지급여력비율(옛 RBC, 현 K-ICS) 권고치를 150%로 설정하고, 100%보다 떨어지면 적기시정조치를 내리고 있습니다. 현재 권고치는 지난 6월을 기점으로 130%까지 일시 완화됐습니다.
MG손보는 2018년 경영개선권고(5월)와 경영개선요구(10월) 등 두 차례의 적기시정조치를 부여받았고, 2019년 6월 자본확충 미이행을 이유로 가장 높은 단계의 적기시정조치인 경영개선명령을 통지 받았습니다. 이후 2022년 4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받고 현재의 청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KDB생명은 2023년 말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가 한시적 유예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유예 규제를 적용했다 해제하면 곧바로 적기시정조치 대상에 오르는데요. 올해 2개 분기 연속 자본잠식에 놓인 KDB생명에 공식적인 적기시정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롯데손보도 2021년 경영실태평가에서 4등급을 판정받아 경영개선요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적기시정조치를 유예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달 경영평가에서 4등급을 재판정받아 적기시정조치 논의 초읽기에 진입했습니다. 금융위는 이르면 내달 초 적기시정조치 여부를 결정할 전망입니다.
사모펀드 관계자는 "감독당국은 제때 경고를 줬고 경영 개선을 위한 기한을 줬다고 하지만, 실제론 적기시정조치를 받으면 자본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이전보다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데, 이미 자본력이 약한 회사는 돈을 버는 족족 자본조달 비용으로 쓰기 때문에 더욱 부실해진다"고 호소했습니다.
KDB생명보험,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간판. (사진=각 사)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