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내 기자질의 '호우시절'

입력 : 2025-09-04 오후 4:45:37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20여년 가까이 기자질을 하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때를 꼽자면, 전에 다니던 신문사에서 영화를 담당했던 2021년 2022년 두 해 동안이었다. 대학 때부터 <씨네21>의 애독자였던 터라 영화 담당기자를 오래 꿈꿨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자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쉽사리 오지는 않았다. 주로 빡센 부서들을 전전하다 어렵사리 주어진 행운이었다. 
 
지난 2022년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열린 경쟁 부문 초청작 <미래의 범죄>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주연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내가 영화를 담당했던 그 시절이 한국 영화의 영화로운 시절과 고스란히 겹친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들뜨게 한다. 한국이 만들고 한국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한국 영화'라고 부른다면, 2022년엔 한국 영화(<헤어질 결심>, <브로커>) 두 편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오징어게임>의 이정재가 감독으로 입봉한 <헌트>도 칸에 초청돼, 그해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는 한국 영화로 흥겨웠다. 
 
생애 첫 칸 출장을 가서 배우들과 감독들을 인터뷰하고 쏟아지는 영화를 리뷰하는 일은, 고됐지만 짜릿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다르덴 형제와 같은 세계적 거장 감독을 비롯해 아이유와 정우성, 이정재, 송강호와 강동원, 박해일, 그리고 탕웨이를 인터뷰한 일을 잊을 순 없다. 아울러 인터뷰를 하진 못했지만 우연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실물 영접한 일은 영화제 취재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담당을 할 때 두 감독의 작품을 리뷰 또는 인터뷰할 수 있기를 꿈꿨지만, 그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와 배우에서 작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두 감독 모두 내가 영화 담당을 하던 그 짧은 시기에 국내에 신작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칸이 가장 사랑한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켄 로치는 내가 칸에 출장 간 그해에만 유독 신작이 없었고, 1971년 감독 데뷔 이래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을 맡아온 클린트 이스트우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영화를 담당할 가능성이 사라졌지만, 온전히 팬으로서 영화를 즐기는 지금이 마냥 서운하지만은 않다. 그 두 해 가까운 시간 동안, 업으로 영화를 보는 영화 기자의 고단함도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그때 영화 담당을 좀 더 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보다 좋았을까, 나빴을까. 다만 그 시절의 인연으로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내 기자질의 ‘호우시절’이 그리울 때, 두 감독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복되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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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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