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1. “선배. 난 이재명보다 윤석열의 당선이 법치주의 확립에 더 부합할 것으로 생각해.”
법치주의 확립을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씨는 12.3 내란을 통해 법치주의를 송두리째 짓밟아 버렸다. 지난 3일, 대통령 윤석열씨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TV 갈무리)
지난 대선 당시 전 회사 선배가 한 후배로부터 들었던 말.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의 일감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그 후배란 자가 평소 보수적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후배와 이웃해 살며 친하게 지냈던 선배마저도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문했다고 했다.
그 후배는 법조를 오래 출입한 회사 내 대표적 ‘친검’ 기자였다. 검찰개혁이 지난 정권 내내 최대의 화두였지만, 그가 속한 법조팀은 단 한 번도 검찰개혁과 관련한 기획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장이 관련 기획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들은 그것마저도 뭉개버렸다. 대신 조국 수사와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윤석열 감찰 사태 때마다 검찰 쪽 논리로 기사를 쓰기 바빴다. 출입처를 감시하라는 기자의 사명은 검찰 출입 기자들에겐 예외였다. 기자들이 출입처에 기우는 것이 법조기자만의 경향은 아니지만, 검찰기자는 유독 그 편향이 심했다. 조국 수사 당시 검찰이 흘려준 정보를 들고 편집회의에 들어온 동기는 편집위원들이 “검찰 쪽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지적하자 “국가기관인 검찰이 거짓말을 하겠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심지어 ‘친검’의 대명사로 꼽힌 한 선배는 조선일보가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때, 검찰 쪽 논리를 빼닮은 ‘절차적 정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까지 무죄가 나왔지만,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그 선배가 이와 관련해 사과나 유감 표명을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지금 난 그 후배라는 자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도 윤석열 당선으로 법치주의가 확립됐다고 생각하냐?”
#2. “윤석열이 된다고 나라 망하냐?”
역시나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당선을 우려했던 내게 친했던 ㄱ 변호사가 한 말이다. 정의당원이었던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나 큰 차이가 없고, 정부는 시스템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윤석열이 당선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대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차이 또한 분명한데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보인 행태를 봤을 때 그가 대통령이 되면 큰 문제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한 난, 그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비상계엄 선포 뒤 인터넷상에서 퍼진 전두환과 윤석열을 합성한 사진. 심지어 윤석열은 군 면제다.
물론 멀리는 노무현 정부,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온 나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이념적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비정규직 양산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얄궂게도 참여정부였고, 가장 리버럴했다는 그 정부 아래서 발전노조 파업은 밥그릇을 지키려 정부를 겁박하는 행위로 매도됐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마지막까지 추켜세운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다는 사실은, 두 정당의 근친성을 보여주는 가장 민망한 대목일지도 모른다. 아울러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인간을 서울중앙지검장에 벼락출세시킨 것도 모자라 검찰총장까지 만든 과오는 두고두고 회자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국민의힘 계열 정부) 때보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민주당 계열 정부) 때 비정규직 문제가 더 많이 개선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특히 국민의힘 계열 정부 시기보다 민주당 계열 정부 시기에 3대 사회보험 가입률이 더 큰 폭으로 상승했고, 비정규직 조직률도 더 크게 상승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도 더 많이 축소됐다.
어찌보면 ㄱ 변호사나 기자 같은 기득권층에 속한 이들에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차이는 크지 않을지 몰라도 비정규직이나 하층 노동자들에게 두 정당 차이는 또렷하다. 뒤집어보면 이 말은 변호사나 기자 같은 이들에게 윤석열 정권은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반면,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3 내란사태는 기득권층에게도 윤석열이 위협이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계엄선포 직후부터 ㄱ 변호사는 페북을 통해 내란 행위를 비판하며 윤석열을 체포하라고 일갈했다. 그의 말은 모두 내가 동의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나는 그에게 되묻고 싶다. “안 망한다더니 나라 망했는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었다. 거기에 우리 주변의 이 같은 한심하고도 순진한 생각들도 한몫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난일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흑인 차별에 대한 적들의 의도적 몰이해가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의 천박한 현실 인식이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윤석열을 당선시킨 조중동과 국민의힘 지지자가 아니라, 순진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얼빠진 현실 인식이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