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청년 일자리, 기업 책임을 제도화할 때

입력 : 2025-09-17 오전 6:00:00
이재명정부가 출범과 함께 내놓은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는 청년 고용 정책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장기 미취업 청년의 발굴과 회복, AI·AX 역량 강화로 고용 창출, 재직 청년의 권리 보장을 세 축으로 삼았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괄적 구상이다. 그러나 정책의 구체성을 살펴보면, 여전히 과거 정부 대책의 한계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장기 미취업 청년 발굴·지원은 범정부 차원의 DB 구축과 플랫폼 운영을 전제로 한다. '쉬었음' 청년 40~50만명 중 15만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실제로 이들을 고용으로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낙인 효과를 최소화할 방법,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협업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정책은 선언에 그칠 수 있다. 
 
둘째, AI 역량 강화 트랙은 K-디지털 훈련을 개편해 ‘훈련-인턴-채용’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는 역대 정부가 반복해온 ‘신산업 기반 일자리 창출’의 변주에 불과하다. AI라는 간판이 붙었지만, 실제 고용 효과는 단기에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들은 다시 훈련과 인턴 단계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고, 안정된 채용으로 나아가는 문은 여전히 좁다. 
 
셋째, 재직 청년 대책으로 제시된 권리 보장, 주4.5일제 지원, 자산 형성 프로그램 등은 필요하지만, 고용정책보다는 전반적인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청년 일자리의 수를 늘리는 직접적 방안은 아니다. 
 
이처럼 이번 대책은 청년의 상태별로 대응책을 세운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훈련-인턴-기업 지원’이라는 기존 틀 안에 머물러 있다. 특히 청년 고용 연령을 34세까지 확대한 것은 장기 미취업 30대 초반을 포괄하려는 취지지만, 핵심인 20대 청년에 중요한 학업과 취업의 연계를 오히려 흐릴 수 있다. 
 
정책의 핵심 과제는 훈련과 인턴을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발적 협력과 유인책(pull)에만 기대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청년고용공시제, 의무고용제, 미이행 부담금 부과 등 견인책(push)을 통해 기업이 청년 고용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고용 지표 개선을 넘어, 청년층의 사회적 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장치다. 
 
청년 고용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난제였다. 1990년대 이후 일곱 차례 이상 대규모 청년 고용 대책이 발표되었으나, 청년 고용은 뚜렷한 개선을 보이지 않았다. 보수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막론하고 ‘훈련과 지원’ 중심의 정책 틀이 유지된 결과다. 그 간 민주당 정부는 부분적인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삶의 여러 영역을 보듬는 청년 보장(youth guarantee)의 틀과 함께 청년에게 직접 소득 지원하는 제도라는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이번엔 AI, 직장 권리, 플랫폼이 가미되고 대책의 구체성도 높아졌다. 문제는 일 경험이든 인턴이든 훈련이든 취업으로 이어질 통로가 중요하고, 그 입구를 넓히는 일이다. 그 절충물처럼 들리는 채용 예정형 인턴은 공개성, 채용 비율, 공정성 측면에서 대다수에겐 그냥 인턴일 뿐이다. 시대의 화두인 AI, 플랫폼 구축이 언급되었다고 새 비전이 아니다. 좀 더 과감하고 과거의 틀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가 이름 그대로 청년 일자리 문제의 전환점이 되려면, 기업 고용 책임을 제도화하는 장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유인과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업이 청년 고용의 실질적 책임을 지도록 규칙을 바꾸지 않는 한, 이번 대책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것이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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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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