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변신의 귀재

입력 : 2025-09-18 오전 6:00:00
카멜레온은 주변 기온과 기분에 따라 수시로 체색을 바꾸는 파충류다. 보통 배우나 가수에게 '카멜레온 같다'는 수식어가 붙으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의미한다. "어떤 연기도 소화할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 "카멜레온 같이 흡수력 강한 아이돌"이란 수식어는 극찬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정치인에게 '카멜레온 같다'는 평가는 어떨까. 대부분 나쁜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인에게 카멜레온 같다는 건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한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다'는 평가와 같다. 줏대 없는 정치인에게 '카멜레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상황에 따라 소신을 바꾸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지금의 여야 대표도 사실상 카멜레온 같은 정치인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경우 여러 계파를 오갔다. 정 대표는 정치권에 입성한 이후 친노(친노무현)계, 친정(친정동영)계, 친문(친문재인)계, 친명(친이재명)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당내 주류 인사들과 가까이 지냈지만, 그렇다고 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주류 안에서도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정치인이 정 대표였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 계파에 머물지 않고 유연한 정치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화려한 변신술을 자랑한다. 크게 보면 친한(친한동훈)계에서 친윤(친윤석열)계로 계파를 옮겼다. 장 대표는 원래 친한계 핵심 멤버였다. 2023년 12월 당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장 대표를 사무총장으로 낙점하자, 일약 친한계 핵심으로 부상했다. 2024년 7월 치러진 전당대회 땐 당시 한동훈 대표의 러닝메이트 격으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다. 이후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거치면서 친윤계로 변신했다. 대선 이후에는 친윤계의 좌장이 돼 당대표를 두고 김문수 후보와 맞붙어 승리했다. 
 
정 대표와 장 대표는 정치적으로 변신의 귀재지만,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시류와 민심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 것이라면 정치인으로서 실용주의적 면모가 강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장 대표의 경우,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에서 그의 카멜레온식 정치 스타일이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밖에서는 이 대통령과 정 대표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지만, 막상 회동 자리에서는 갈등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 대표도 마찬가지다. '저격수 정청래'에서 '지도자 정청래'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에서 '카멜레온 정치인'으로 불리는 올라프 숄츠 전 총리는 좌파 정당에서 입지를 굳혔지만 좌우를 가리지 않고 실용적 목소리를 내 "카멜레온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숄츠 전 총리의 행보를 두고 '카멜레온'으로 표현하며 실용성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 '이념 지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야 대표 모두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위해 자기 진영 내 변신이 아닌 좌우를 넘나드는 변신의 귀재가 되길 바란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리저리 변신하다 보면 정 대표와 장 대표가 손을 잡는 일도 있지 않을까. 
 
박주용 정치팀장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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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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