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쿠팡이 한국 정부·수사기관과의 협의 없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배경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쿠팡의 전방위적 로비가 뒷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쿠팡이 미국 정·관계에 대한 로비력을 통해 한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는데요.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글까지 게재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쿠팡의 로비 활동이 선을 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측 인사들을 제재 회피 카드로 활용하면서 한국 정부를 무시하는 듯한 쿠팡의 태도에 국내 여론도 차갑게 돌아선 모양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역대급' 대미 로비…'5년간 1075만달러' 지출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오는 30~31일 이틀간 진행될 쿠팡 청문회엔 당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만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쿠팡의 미국 정·관계 인사 로비 의혹이 새롭게 부상하면서 외교통일위원회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확대됐습니다.
앞서 쿠팡은 전날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와중에 셀프 조사 결과를 독단적으로 공개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의 어떤 협의도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쿠팡이 한국 정부를 압박하도록 미국 정치권에 로비했다는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여권에선 쿠팡에 대해 한국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라는 비판이 거세졌습니다.
최근 미 의회가 쿠팡 사태와 맞물려 한국의 플랫폼 규제 추진을 공개 비판한 데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까지 돌연 취소된 것을 두고 쿠팡의 대미 로비력의 힘이 발휘된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실제 쿠팡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155억원 규모의 로비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미국 연방 상원이 공개하는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3월 뉴욕 증시 상장 뒤인 그해 8월부터 2025년까지 5년간 1075만달러를 로비 활동에 사용했습니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취임식 땐 100만달러(약 14억원)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로비스트 인원도 2021년 4명에서 2025년 32명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쿠팡은 이도 모자라 최근 미 현지에서 대관 인력 추가 채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쿠팡의 미국 현지 대관 조직을 이끌었던 알렉스 웡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수석 부보좌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쿠팡의 로비 대상은 입법기관인 연방 상·하원뿐 아니라 백악관과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무부, 재무부, 농무부 등을 망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의 수석보좌관까지 상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지난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국회' 인사 대거 영입…'규제·과징금' 방어 활용
쿠팡은 국내에서도 방대한 대관 인력을 운용해왔습니다. 일단 전·현직 대표가 모두 대관 분야 출신입니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LG전자 대외협력실과 네이버 정책실을 거친 대표적인 대관 출신 인사입니다. 또 대관 조직 총괄은 올해 초 삼성전자에서 대관 업무를 맡았던 민병기 부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특히 쿠팡은 각종 규제와 과징금 논란 등을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정부 인사를 대거 영입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5년간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44명을 영입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검찰과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 등 정부 부처 출신 인사들이 대관 인력으로 쿠팡에 자리했습니다. 대체로 쿠팡이 직면한 각종 리스크와 관련 있는 부처의 인사들입니다.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국회 보좌진 출신 인사들도 쿠팡에 대거 영입됐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6년간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접수된 취업 심사 438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주요 기업 중에서 국회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곳은 쿠팡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6년간 보좌관 15명과 정책연구위원 1명 등 16명이 국회에서 쿠팡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를 두고 단순한 대외 협력을 넘어선 과도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회 보좌진 출신 인사들의 대관 업무를 통해 기업에 발생한 리스크를 해결하려는 의도라는 것인데요. 실제 쿠팡이 이번 대관 로비에서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상임위 출석을 무마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강화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쿠팡의 영업을 정지한다면 양국의 통상 문제로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질 수 있다"며 "쿠팡이 로비한 것이 벌써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쿠팡이 국내 대관 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공정위와 금감원, 국회 여야 보좌관 등이 쿠팡에서 대관 업무를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사고가 나도 다 유야무야됐다. 이 카르텔을 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