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단위 분석으로 자폐 스펙트럼 새 유전적 기전 규명

분당서울대병원, 세계 최대 구모 가족 코호트 분석 실시
같은 유전자 변이라도 변이 발생 위치 따라 증상 달라져

입력 : 2025-09-24 오전 9:23:52
위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PTEN 유전자. (사진=분당서울대병원)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분당서울대병원의 세계 최대 규모의 자폐 가족 코호트 데이터 분석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새로운 유전적 기전이 규명됐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유희정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한국과 미국 자폐 가족 코호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같은 유전자라도 변이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을 찾아냈고, 신규 자폐 연관 유전자 18개를 발굴했다고 24일 밝혔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의사소통 문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사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질환입니다. 자폐에 대한 연구는 부모에게는 없지만 자녀에게 새롭게 생긴 유전자 변이인 '새 발생 변이'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다만 실제 임상에선 같은 유전 변이를 가진 자폐인이라도 증상이 크게 달라 기존 방식만으로는 해당 변이가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유희정 교수팀은 가족 단위로 유전변이 효과를 측정하는 '가족 내 표준화 편차(Within-family standardized deviations)'라는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가족 안에서의 상대적 차이에 주목한 것으로 부모와 형제자매의 임상 점수를 기준으로 삼고 자폐인과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변이가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접근법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170㎝인 남성 A씨가 속한 가족의 남성 평균 키가 185㎝라면 A씨의 키는 전체적으로는 평균 수준이지만, 가족 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 배경을 고려해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한국과 미국 자폐 가족 코호트 총 2만1735가구(7만8685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규모 엑솜·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엑솜 분석은 전체 유전체 중 단백질을 만드는 부분만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엑솜은 전체 유전체의 1~2%에 불과하지만 유전 질환 변이의 대부분이 이 영역에 존재합니다. 전장 유전체 분석은 생명체의 모든 DNA 정보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연구팀은 또 사회적 반응성 척도 등 발달·행동 지표를 결합해 분석하고, 가족 단위 임상 점수를 기준으로 유전자 변이가 실제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습니다.
 
연구 결과 같은 유전자 변이라도 변이가 발생한 위치에 따라 자폐인의 증상, 혹은 변이 효과가 달라지는 유전자 11개가 확인됐습니다. 일례로 PTEN 유전자는 세포 성장과 신호 조절을 담당하는 유전자인데, 일반 부위에 변이가 생긴 자폐인의 사회성 장애 점수보다 핵심 기능 부위(촉매 모티프 영역, 효소가 실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부분)에 변이가 생긴 자폐인은 사회성 장애 점수가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기존 방식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던 자폐 관련 신규 유전자 18개도 발굴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자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습니다. 기존 유전자들이 주로 신경세포 자체의 기능과 관련된 반면 새로 발견된 유전자들은 단백질 변형, 신호 전달 과정, 그리고 뇌에서 신경세포를 돕는 보조 세포들의 기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자폐가 단순히 신경세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함께 작용하면서 생기는 복합적인 질환이라는 겁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번 연구가 세계 최대 규모의 가족 코호트를 활용해 유전자 변이 효과를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진 자폐인 간 증상이 다른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예후 예측과 맞춤형 중재 전략 개발의 토대를 마련한 점을 부각했습니다.
 
유희정 교수는 "가족 배경을 고려한 유전자 변이의 새로운 분석 방법은 자폐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자폐인 맞춤형 예후 예측 및 정밀의학적 접근을 통해 자폐의 임상적 이질성과 발병 기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큰 진전이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준용 고려대학교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가 함께 진행한 이번 연구는 유전체 분야 국제학술지 '게놈 메디신(Genome Medicine)' 최근호에 게재됐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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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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