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강의, 시험, 에세이 없는 21세기 대학"

주목할 만한 영국 NMITE의 놀라운 혁신
대학이 직면한 위기와 해법 2

입력 : 2025-10-13 오전 9:55:11
팀워크와 실습 중심 학습은 NMITE 교육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사진=NMIT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영국 헤리퍼드(Hereford)에 세워진 새로운 기술공학 교육기관인 NMITE(New Model Institute for Technology and Engineering)는 전통적인 고등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혀 새로운 모델입니다. 이 기관은 연구나 유학생 유치보다 지역의 필요와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역적 요구를 우선시함으로써 교육 방식을 재구상하고 혁신한 것입니다. 
 
영국 일간지 텔리그래프는 지난 2023년 7월28일 NMITE를 다룬 기사 제목은 “헤리퍼드에서 조용한 교육혁명이 일어나고 있다”입니다. 부제는 “NMITE는 고등교육계의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 할 수 있다. 주머니에 넣을 만한 크기의 발전소다”라고 달았습니다. ‘조용한 교육혁명’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조용한 교육혁명
 
이 대학의 모든 움직임은 혁신 그 자체입니다. 9월 하순 네이처(Nature)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들, 대학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특징들을 정리해봅니다. 
 
NMITE의 첫 번째 특징은 실무 중심 교육입니다. ‘행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강의나 시험 없이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학생들은 소규모 팀을 이루어 기업 고객이 제시한 과제를 수행합니다. 그들은 실제 작업 환경과 유사한 공학 스튜디오에서 이 실습 중심의 학습을 진행합니다. 
 
당연히 산업계와의 긴밀한 연계가 핵심입니다. 80개 이상의 기업 파트너와 협력하여 교육과정을 공동 설계하고, 학생들은 입학 첫날부터 졸업까지 산업계 멘토와 교류하며 실무 경험을 쌓습니다. 가속화된 학사 및 석사 학위 프로그램으로 연간 46주 동안 학습하며, 실제 기업을 고객으로 삼아 제시된 현실 세계의 과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합니다. 이는 특정 단기 집중 학습 모듈로 구성됩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문적 내용, 기술적 역량, 전문 실무를 초반부터 함께 습득합니다. 공학 기업들도 이 잠재력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당수 모듈의 클라이언트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포용적인 입학 정책도 독특합니다. 공학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이나 물리 A-level(영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성적을 요구하지 않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잠재력 있는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습니다. 이는 여성 공학도 비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전혀 새로운 학사 운영도 눈에 띕니다. 학생들은 '9시부터 5시까지, 주 5일, 연 46주'라는 직장과 유사한 일정으로 학습합니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수강하는 대신, 8주 단위의 '스프린트(sprint)' 기간 동안 한 가지 모듈에 집중하는 '블록 학습(block learning)'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총체적 혁신’이라고 부를 정도의 놀랄 만한 변화들입니다. 
 
NMITE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다섯 가지 자질은 인내심, 호기심, 열정, 창의성, 협업 능력입니다. 역경을 극복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학습하고 사고할 수 있으며, 깊은 관심사나 취미를 가지고,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며,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학생을 원합니다. 출신 학교나 배경, 부모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생들 중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다양한 가정 출신이며, 학교는 미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간적 역량이라는 '숨겨진 교육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진정한 수준 향상의 실천’
 
NMITE의 개교 소식을 보도한 2018년 11월13일 가디언지의 기사를 보면 그 시작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기사 제목은 “헤리퍼드 유일의 레즈비언 멕시코인 여성 기계공학자가 대학을 설립한다”였습니다. 헤리퍼드는 대학이 없는 몇 안 되는 잉글랜드 카운티 중 하나였고, 50명의 입학생을 목표로 한 이 기관은 2021년 9월에야 학위과정을 처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강의, 교과과정, 시험, 학기제 같은 전통적인 요소가 없을 것이고, 심지어 졸업하는 공학도들조차 우리가 아는 공학자와는 다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시, 음악, 철학에 손을 댄 ‘인문학적’ 혹은 ‘르네상스형’ 공학자가 될 것이라고. 
 
졸업생들이 별도의 재교육 없이 즉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첫날부터 준비된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NMITE의 선언은 실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첫 졸업생 25명 중 23명이 졸업 직후 관련 분야에 취업하는 등 높은 취업률을 보이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상당히 고무적인 점은 2024년 첫 졸업생 중 절반이 이미 지역 기업들로부터 3만파운드(약 5000만원)부터 시작하는 일자리를 제안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에서나 훌륭한 초봉이며, 헤리퍼드셔 주의 성인 평균 임금보다 높은 금액입니다. 이는 지역 내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설립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기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과입니다. 물론 신생 기관으로서의 낮은 인지도와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 위치한 점 등은 학생과 우수한 교직원을 유치하는 데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NMITE는 대부분 논의만 무성하고 변화가 더딘 고등교육계에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 가능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한 교육 개혁 실험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까지 성장하기까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발상법’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텔리그래프는 NMITE의 변화가 ‘진정한 수준 향상(levelling up)의 실천’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아이디어는 지역 경제와 수천, 어쩌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합니다. 우리의 대학 혁신에서도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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