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연휴를 마친 뒤에도 우리 주식시장은 강했다. 한국 증시가 명절로 쉬는 사이 미국에선 반도체 종목들이 괄목할 만한 강세로 시장의 상승을 이끌었고 일본도 새 총리에 대한 기대감에 모처럼 급등세를 나타냈다. 덕분에 다시 열린 우리 증시는 또 한 번 신고가를 기록. 코스피 3600 시대를 열었다.
지수 상승과 함께 덩치도 몰라보게 커졌다. 지난 10일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전체 시가총액은 2974조원을 기록했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3000조원이다. 여기에 코스닥 시총 452조원을 더하면 우리 주식시장은 이미 ‘3000조 시대’에 들어섰다.
이쯤에서 우리 시장이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기록한 것 말고 질적 성장은 어디만큼 왔는지, 제도와 규정에 관여하는 당국을 포함해 자본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구성원들은 과연 지수만큼 시총만큼 성장했는지 묻고 싶다.
‘곱버스’, ‘레버리지’ 매매에 몰리는 공격적 성향의 개인 투자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판, 비난 때로는 조롱에 가까운 지적을 받는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가 정답은 아니고 개인들이 맞은 경우도 꽤 있지만 ‘돈 놓고 돈 먹기’식 투기적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1000조에서 2000조, 3000조,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데 플레이어만 바뀔 뿐 ‘주식 하면 돈 날린다’라는 말을 굳이 자신이 증명하려는 개인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적어도 피해와 손실을 자신으로 제한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나머지 구성원들은 어떤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한데 묶어 금융투자회사들은 돈만 벌면 무슨 일이든 다하는 것 같다. 금투사도 이익집단이라 돈을 버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겠지만, 눈앞의 돈을 좇느라 주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게 자본시장 발전에 해가 되는 일이거나 다른 시장 구성원을 해치는 일이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전체가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성과에 목마른 회사 내 특정 부서들이다. 그런데 특정 부서가 일으킨 논란을 모아보면 거의 전체라는 게 문제다.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가연계증권(ELS) 부실 판매, 부실기업 기업공개(IPO), 이해 못 할 인수합병(M&A) 등 수많은 고유 업무에서 논란을 빚었다.
최근엔 자사주 빼돌리기용 교환사채(EB) 발행 주관이 주인공이다. 여기엔 운용사, 캐피탈 등도 사모펀드로 합세했다. 전체 주주의 자산인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등 원하는 곳에 쓰고 싶어하는 대주주들의 니즈를 충족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인 셈인데, 금투사의 고객이 기업, 그 중에서도 대주주뿐이었나?
대낮의 도둑질을 단도리해야 할 경찰, 이 경우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은 정부 조직 개편에 몰입돼 이런 덴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현재 국회가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법제화된 후 과연 외양간에 소가 남아 있을까? 코스피5000특별위까지 만들었는데 국회가 이 논란을 모를 리는 없고, 어쩌면 외양간의 소 떼가 부담돼 이들이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라도 하는 걸까? 소 떼가 빠져나간 뒤에야 외양간을 고치는, 이런 걸 일컬어 ‘정무적 감각’이라 하는 것인지 정치부 부장에게 물어봐야겠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