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조이자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수요를 조절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차주들은 높은 이자 부담을 안고 신음하는 사이 은행은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가 결과적으로 은행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산금리 1월부터 지속 상승
13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산금리는 전반적으로 상승했습니다. NH농협은행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방식 금리 현황을 보면 올해 1월 3.46%에서 6월 3.48%, 9월 3.55%로 올랐습니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2.09%에서 2.32%, 2.36%로 상승했습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3.05%에서 2.70%로 낮췄다가 다시 2.85%로 반등했습니다. 하나은행은 3.10%에서 2.98%로 떨어졌다가 규제 발표 이후 2.99%로 소폭 올랐고, KB국민은행은 3.22%에서 3.23%으로 올랐다가 규제 시행 이후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은행들의 이런 행보는 정부가 6·2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 금융권의 정책대출 제외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당초 계획 대비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5대 은행은 하반기 대출 증가 목표를 상반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를 축소했습니다.
가산금리는 은행의 운영비용, 신용위험, 자본비용 등을 반영한 추가 금리로,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대금리는 대출자가 은행의 다른 금융상품을 이용하거나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 적용되는 마이너스 금리 혜택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차주들의 대출 욕구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승인 자체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결국 금리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대출 목표 못 지킨 은행들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
일부 은행의 경우 대출금리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목표치는 준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초과했습니다. NH농협은행은 목표 2조1200억원을 109% 넘긴 2조3202억원, 신한은행은 목표 1조6375억원을 120% 초과한 1조966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하나은행은 8651억원, KB국민은행은 1조7111억원으로 각각 목표의 95%, 85%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당국이 정한 총량 목표를 초과한 은행이 늘면서 금융권에서는 향후 추가 대출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목표 초과분을 상쇄하기 위해선 신규 대출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당분간 당국 지침을 보면서 조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의 총량 규제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잡는 대신 은행의 수익성만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도 체감 금리가 낮아지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은행의 핵심 수익원인 예대금리차 확대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대금리차는 은행이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이자율과 대출자에게 부과하는 이자율의 차이로, 은행 최대 이익의 기반이 됩니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이자 장사를 통한 마진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대 은행의 지난 9월 신규 취급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1.48%p로 전월1.468%p보다 0.12%p 증가했습니다. 예대금리차는 6월부터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이자 장사'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당국 역시 예대금리차를 줄여야 한다며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하나은행 본점 영업점을 방문해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취약 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는데 은행권에서만 예대마진 기반의 높은 수익성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며 "기준금리가 인하되는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예대금리차가 지속된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은행업계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와 시장금리 인하 등이 맞물려 예금금리가 내려갔지만, 대출금리는 정부 규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높인 상황이라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알고 있지만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분이 실제 리스크 비용 증가보다 더 빠르게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며 "규제가 길어질수록 예대금리차는 더 벌어질 수 있는데 시준금리 인하 등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조이자 은행들은 되레 가산금리와 예대금리차를 키우며 이익을 늘리고 있다. 대출은 막히고 금리는 오르며 실수요자만 부담이 커지는 사이, 시중은행들은 수익성 방어를 넘어 역대급 예대마진을 챙기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시가지.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