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가 농협 개혁 법안을 연내 통과 목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예정입니다. 농협개혁법은 농협중앙회장의 막대한 권한과 비상임조합장의 장기집권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야 간 이견이 크게 없는 데다 중앙회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농협 개혁이 시급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유사 법안 병합 심사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해수위는 농협 개혁을 골자로 발의된 여러 건의 농협법 개정안을 병합 심사해 연내 통과시킨다는 목표입니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윤준병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정리된 이후 국회 계류된 농협개혁법 논의도 시작할 것으로 본다"며 "연내 통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농협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제외하고는 쟁점이 없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봤듯이 농협중앙회나 조합장의 비리 문제가 고질적이라는 점을 의원들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감이 끝나면 상임위 차원에서 예산안 관련 논의가 있는데, 그 이후 법안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며 "오는 11월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농협 국감에서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뇌물수수 의혹을 비롯해 조합장 불법 선거, 지역농협 조합장의 폐단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농협의 상무급 22명 중 18명이 강호동 회장의 선거 캠프 출신이 내려온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단골 소재로 올라왔습니다.
또한 서울 중앙농협 조합장이 선거 때 '금 15돈, 무료 해외여행'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로 당선 이후 조합원들에게 골드바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 농협에서는 성추행 갑질 사고가 터졌지만 중앙회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윤 의원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은 비상임조합장 연임을 2회까지 제한하고, 조합장 선출방식을 조합원 직접 투표로 일원화하는 내용입니다. 지역농협에 준법감시인을 1명 이상 두고, 농협중앙회 임원 추천 및 선정 과정의 의사록 작성 의무화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윤 의원은 이날 농협금융지주를 비롯한 금융사의 공공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관계법령 위반자를 금융회사 임원에서 배제하는 '농협금융지주 임원 결격 사유 강화법'을 발의했습니다. 현행 '농업협동조합법'상 임원의 결격 사유에는 위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선고받고 4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임원의 자격 요건에는 위탁선거법 위반에 대한 결격사유는 규정돼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의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의 인사 투명성 제고를 위해 인사추천위원회 운영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농협중앙회장에게 인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은·코드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협중앙회 인사추천위가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업전담 대표이사·이사·감사위원·조합감사위원장 등을 의결하도록 하고, 회의 심의·의결 내용을 기록한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입니다.
같은 당 이만희 의원안은 농협중앙회 및 지역농축협, 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 등의 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조공법인 등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외부 회계감사를 도입하도록 해 재무 부실을 예방하는 내용입니다.
국회 농림출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협개혁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어기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 수사 별개로 입법 진행"
농협개혁법의 핵심은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한 권력을 분산하고 비상임조합장의 제왕적 권한을 제한하는 데 있습니다. 현행 농협법에서 조합장 임기는 4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상임조합장은 두 차례 연임할 수 있어서 최장 12년 동안 재임할 수 있는 반면 비상임조합장의 경우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 장기 재임이 가능합니다. 지역농협의 자산총액이 2500억원 이상인 경우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비상임조합장 10명 중 2명이 4선 이상이고, 10선 이상을 한 조합장도 있습니다. 2선 이상 조합장들이 비상임 조합장 제도를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조합장들이 장기집권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횡령, 특혜성 대출 등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농해수위 검토 보고서를 보면 "농협 비상임조합장도 상임조합장과 권한 행사에 있어 차이가 없는 반면, 그에 따른 책임은 적다고 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며 "연임 횟수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농협의 감독 소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국회에 비상임조합장의 연임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농식품부는 △비상임조합장이 조합 대표권, 직원 임면권 등을 통해 조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점 △수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타 조합은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을 일정 횟수로 제한하고 있는 점 등을 꼽았습니다.
농협법상 중앙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론 인사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 회장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측근들이 중앙회 계열사나 각 지주사에 내려오면서 '보은 인사' 지적을 받고 있습다. 지난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분리)' 이후에도 금융·경제 지주사들은 자신들의 지분 100%를 보유한 중앙회를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농해수위 관계자는 "강 회장의 금품수수 의혹 수사와 별개로 입법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 있는 강 회장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경찰은 강 회장이 2023년 말 회장 당선이 유력하던 시기에 농협과 거래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1억여원의 현금을 받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농해수위 의원들은 금품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강 회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