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몇 년째 정체돼 있던 실적이 감소할 조짐입니다. 주가는 시장에서 소외된 기간 내내 하락했고 코스피가 전대미답의 4000 시대를 연 올해에도 여전히 약세입니다. 결국 ‘설마’ 했던 소식이 전해집니다. 최대주주의 주식 지분 증여입니다. 그분들은 주가 하락 덕에 증여세를 아꼈지만 주주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증여할 주식이 남았습니다. 이런 일 막자고 국회에선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냈는데 언제 논의할지, 통과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대주주가 증여세 마련용으로 배당이라도 늘릴지 모르니 그거라도 챙겨야겠습니다.
환인제약 3년째 하락…주가 낮을 때 증여
정신신경과 치료제 개발에 특화된 제약사 환인제약이 지난 30일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냈습니다. 이광식 환인제약 회장(78세)이 보유주식의 절반에 해당하는 186만주를 아들이자 회사 대표인 이원범 사장(51세)에게 증여했다는 내용입니다.
증여 결과 이광식 회장의 지분율은 20%에서 10%로 감소했고, 이원범 사장은 3.27%에서 13.27%로 급증했습니다. 최대주주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뀐 것입니다.
두 부자의 지분을 뺀 대주주 명단엔 피델리티펀드(5.64%), 국민연금(4.93%)이 올라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사주 비중이 12.54%로 큰 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보유 자사주 소각 방안이 통과할 경우 자사주 비중이 큰 환인제약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르기 전에 증여를 실행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상장주식은 증여 직전 2개월부터 증여 직후 2개월까지 총 4개월 동안의 평균값(주가)으로 증여재산을 평가합니다. 그 4개월 동안 주가가 낮을수록 증여세를 줄일 수 있습니다. 환인제약의 주가는 2023년부터 줄곧 하락해 최근엔 1만원 선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1만원대로 반등했고 최근 1만1000원대로 올라선 상황인데요. 더 떨어지긴 어렵겠단 판단이 섰다면 지금 증여하는 게 두 부자에겐 유리할 것입니다.
증여세 마련용 배당 증액 기대
이 회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남은 지분도 언젠가는 증여로 또는 상속 형태로 물려주겠지만 일단 10% 지분에 대한 증여세만 해도 적지는 않습니다. 증여세는 받는 사람 즉 이원범 대표가 내야 합니다.
환인제약 186만주를 최근 시세로 어림잡으면 대략 200억원쯤인데요. 증여세는 과세표준 30억원 이상 구간에 최고세율 50%를 적용합니다. 최대주주 20% 할증 규정은 환인제약이 연매출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이라 특례조항이 적용돼 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증여세는 약 90억원쯤 될 전망입니다.
이 돈을 한꺼번에 낼 만큼 자산이 많지는 않을 테니 세금 납부를 위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증여세를 5년간 분할해 납부할 경우 연간 18억원이 필요합니다. 이 돈을 배당으로 충당할 수 있을까요?
환인제약은 매년 이익이 얼마이든 주당 300원을 배당했습니다. 이 대표는 물려받은 주식을 포함해 현재 246만9067주를 보유 중입니다. 똑같이 300원을 배당할 경우 7억4000만원가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배당소득세를 떼야 합니다. 대주주에겐 35%의 배당세율이 부과됩니다. 이걸 25%로 낮추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배당소득세를 떼지 않아도 10억원 이상 부족한데 세후 배당금으로 보면 증여세를 낼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환인제약이 앞으로 5년 동안은 배당금을 증액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환인제약은 6월 말 현재 이익잉여금 3630억원, 자본잉여금 211억원을 보유 중이어서 배당을 증액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주당 1000원을 배당해도 35% 세율로 배당소득세를 떼면 세후 18억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자본잉여금을 재원으로 감액배당을 하면 배당소득세를 떼지 않는데, 이건 작년까지 가능했던 일입니다. 올해부터는 감액배당의 비과세 혜택은 일반 주주에게만 주어집니다. 대주주는 감액배당에도 세금이 붙습니다.
상증세 개정해도 배당 증액이 절세에 도움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증여·상속세 산정 시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이하인 상장기업의 경우 비상장주식처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반영해 세금을 산출하자는 내용을 담은 상증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환인제약처럼 상증세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르는 것, 최소한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10월 말 현재 환인제약의 시가총액은 2120억원입니다. 6월 말 기준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본총계가 3805억원에 달해 PBR은 0.56배 수준에 그칩니다. 만약 이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를 넘는다면 환인제약 같은 경우가 발생해도 주가 누르기만으론 세금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PBR을 0.8배 이상으로 높이려면 주가가 오르거나 순자산이 감소해야 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증여세 산정 변수 하나는 줄겠지만 다른 하나가 늘어 직접적으로 절세 목적을 달성할 순 없지만, 대신 배당을 늘리면 그만큼 순자산이 감소해 PBR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의원의 개정안이 법제화되는 경우라도 배당 증액은 증여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