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오른쪽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저 왼쪽 캐빈까지 난간을 잡고 한참을 걸어가야 해요. 밑은 다 뚫려 있고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에펠탑 오르듯 가야 합니다.”
지난달 30일 해양기자협회가 부산항만공사와 함께 찾은 부산 북항 내 신선대·감만부두. 부산 북항 최대 터미널 운영사인 BPT가 운영하는 이 곳은 바다와 맞닿은 야드 위로 거대한 크레인들이 철골을 삐걱대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한형석 BPT 운영기획실 실장이 가리킨 흰 박스모양의 캐빈은 지상 35~50미터 높이에 위치해 조종사가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선적과 하역이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 조종사는 좁은 조정석 안에서 트롤리를 조작해 수십 톤짜리 컨테이너를 배와 야드 트랙터 사이로 정밀하게 옮깁니다.
지난달 30일 부산 북항 터미널에서 갠트리 크레인이 선박으로부터 화물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제는 이 작업이 사무실 안에서도 가능해집니다. 정부가 2030년까지 국내 항만을 자동화·디지털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 부산항만공사는 2019년부터 ‘스마트항만 로드맵’을 마련해 1단계로 올해까지 하역-이송-장치 전 과정의 자동화를 추진 중입니다. 현장 운영 주체인 BPT는 안벽 크레인을 원격조종 방식으로 개조 중이며, 시범 장비는 이달 중 완성됩니다. 수십미터 상공의 조정석 대신 사무실 내 모니터와 조이스틱으로 크레인이 조종되는 셈입니다. 원격조종이 상용화되면 조종 인력은 육상 사무실로 옮겨가고, 야드 무인화로 현장은 기계와 데이터가 주고받는 영역으로 바뀝니다. 한 실장은 “장비 한 대 개조에 12억원, 전체 원격 시스템 구축에 180억원이 투입된다”며 “내년까지 안벽 자동화율 100%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벽은 선박이 항만에서 안전하게 정박해 화물 하역이나 승하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수심이 깊은 곳(보통 $4.5$m 이상)에 세워진, 거의 수직 벽면을 가진 구조물입니다.
신선대부두는 2006년 국내 최초로 ‘야드 자동화 크레인’을 상업 운전한 부두이기도 합니다. 당시 도입된 8대 장비는 업그레이드 중이며, 올해 새로 도입된 7대를 포함해 총 15대가 무인화됩니다. 부두에 내려진 컨테이너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야적됩니다.
부산 북항의 자동화는 전면 구축을 향해 가는 전환 단계에 있습니다. 신항의 동원글로벌터미널이 안벽·야드·이송의 세 영역을 완전 자동화한 국내 유일 사례라면, 북항은 현재 야드 중심의 자동화를 기반으로 안벽과 이송 영역으로까지 기술을 확장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BPT는 안벽 원격조종이 완료되면 야드 영역을 포함해 세 영역을 통합하는 자동화 체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장비와 시스템 투자 규모는 총 977억원이며, 올해 이후 단계별로 진행됩니다.
지난달 30일 부산 북항 터미널에서 크레인이 선박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야드 트랙터로 옮기고 있다. (사진=BPT)
자동화의 목적은 첫째 ‘안전’입니다. 안벽 상공에서의 수작업은 낙하와 충돌 위험이 높고, 장비 진동에 따른 피로도가 큽니다. 원격조종은 이러한 위험을 원천적으로 줄입니다. 둘째는 ‘효율성’입니다. 조종사가 현장에 직접 탑승하지 않아도 돼, 악천후에도 작업이 가능하고 장비 가동률이 높아집니다. 한형석 실장은 “정부·민간·노조가 함께 논의하며 속도를 맞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술의 전환은 단순한 작업 방식의 변화를 넘어 항만 운영과 해운 산업의 흐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북항은 지난 2006년 국내 최초로 야드 자동화 크레인을 상업 운전한 이후 단계적으로 장비 업그레이드와 원격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그 결과 BPT의 연간 처리 물동량은 2016년 306만TEU에서 2024년 430만TEU로 약 40% 증가했습니다. 자동화와 장비 고도화가 하역 효율과 장비 가동률을 높이고, 선박 회전율을 개선한 결과로 평가됩니다.
이정행 BPT 대표는 “당사는 ISO45001 인증을 기반으로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했으며 안전제보앱 운영과 스마트 안전설비 도입을 통해 졸음·과속 사고 등 위험요인 92% 개선 등 성과를 달성했다”며 “대한민국 해운항만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는 (재)바다의품과 (사)한국해양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부산=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