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휴먼 인텔리전스 루프

입력 : 2025-11-07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는 영화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오프닝 대사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문구로 통하죠. 
 
오래전 먼 은하에서 벌어진 이야기라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에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단순한 SF 장르를 넘어 현대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인 <스타워즈> 캐릭터 중 드로이드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언어를 번역하고 사람의 감정을 읽으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C-3PO, 그리고 상황을 학습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드로이드 R2-D2. SF 영화 속 존재였던 '지능형 기계'들은 현실 세계에서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이름으로 로봇산업 성장의 전략적 위상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으로 언어를 번역하고 사람의 감정을 읽으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C-3PO, 그리고 상황을 학습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드로이드 R2-D2가 등장하고 있다. (캡처=스타워즈 영화 속 한 장면)
 
현재 AI는 디지털 세계, 즉 화이트칼라의 지식 노동을 중심으로 진행돼왔습니다.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텍스트, 코드, 이미지를 생성하며 인간의 인지적 영역을 모방하는 수준이죠. 그러나 AI는 가상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능을 '움직이는 행동'으로 구현하는 피지컬 AI의 등장은 미래 노동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거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옵티머스(Optimus)', 엔비디아의 'GR00T', 일본 혼다의 '아시모(ASIMO)',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까지 스타워즈의 드로이드가 던진 상상력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언어 모델로만 존재하기보단 물리적 실체를 가진 지능로봇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과 마주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피지컬 AI의 등장은 단순한 로봇 기술의 진보가 아닙니다. AI가 무엇을 학습하느냐, 즉 인간의 어떤 지식을 흡수하느냐에 따라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자리할 겁니다. AI의 첫 세대는 인터넷에 흩어진 텍스트를 학습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언어 모델은 인간의 사고를 표면만 할 뿐, 맥락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과정에서 실수를 수정했는지 '사고의 궤적'엔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제작한 이족보행 로봇 아틀라스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하지만 AI는 단순히 정보를 읽는 단계를 넘어 사람의 행위와 사고의 패턴 자체를 배우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이 코드를 디버깅하고, 보고서를 편집하고, 협업 툴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 모두는 AI의 훈련 데이터가 됩니다. 엔지니어들은 이를 '작업 기반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AI는 인간의 '결과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법'을 배우는 존재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학습 방식이 미래 지식 노동의 정의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보고서를 쓰거나 코드를 작성하는 인간의 지식 노동이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그 과정이 모두 기록되고, 정제되고 AI의 학습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명문대를 중퇴한 20대 청년들의 AI 스타트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머코어 CEO 브렌던 푸디는 이를 '지적 과정 데이터'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며 거치는 모든 사고의 흔적이 AI에게는 '교재'가 되는 것입니다. AI 학습의 핵심 연료이자 경제적 자산, 바로 지식노동이 AI 학습의 한 축이 되는 새로운 경제 구조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30일 경북 경주엑스포공원에 마련된 APEC 경제전시장 'K-비즈니스 스퀘어'에서 인공지능 용접 로봇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인간과 AI의 공진화이자 휴먼 인텔리전스 루프인 이 구조는 AI가 사람의 일을 돕고, 그 과정에서 생긴 데이터가 다시 AI의 학습에 사용됩니다. 더 발전한 AI는 또다시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죠. 결국,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했던 산업혁명 시대가 끝나고 AI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력을 확장시키는 '지적 동력'으로 몸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고, 감각을 통해 맥락을 이해해야 비로소 진정한 '지능'을 완성합니다. 
 
오늘날의 AI 연구는 언어 모델과 로봇을 결합시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처럼 '보고, 듣고, 만지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려면 인간의 물리적 경험과 지적 판단을 통합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능을 위한 학습엔 저작권이 없을까. '지식 노동의 저작권'과 '사고의 소유권'은 새로운 이슈로 남아 있습니다. 지식 노동이 단순한 개인의 생산활동이 아닌 AI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는 순간, 그 가치는 개인·조직·사회 모두가 재정의해야 하는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AI 시대의 공정한 보상 체계는 단순히 데이터를 제공한 대가를 넘어 사람의 사고를 학습 자원으로 제공하는 데서 정당하게 인정돼야 할 겁니다. 
 
 
지능을 '움직이는 행동'으로 구현하는 피지컬 AI의 등장은 미래 노동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거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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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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