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인류의 역사는 '기술 혁명' 앞에 섰을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맞았습니다. 기술 혁명 때면 어김없이 인간 통치력과 기술의 힘이라는 논리 사이에서 공공 이익, 윤리적 기준이 강조되곤 했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주서 『국가』에서 '기술의 힘이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의미가 이런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맥루언은 매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표현하는 등 인간의 감각·능력을 확장시키는 도구의 역할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인류는 18세기 '기계 혁명'과 19세기 말~20세기 초 '전기 혁명', 20세기 후반 '정보·인터넷 혁명', 21세기 '지능정보·데이터 혁명' 등 1~4차를 거친 산업혁명의 변천사를 겪어왔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아트코리아랩에서 열린 2025 아트코리아랩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꼭두각시 인형인 'Pseudo Flesh'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늘날은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도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독일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이 인간의 본질을 가리거나 위협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이제 와 우리 현실을 예언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부는 AI를 경제 돌파구로 내세우고 있지만 '청년층 일자리 감소'라는 냉혹한 현실을 벗어나긴 어려워 보입니다.
최근 한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을 보면, AI가 대체할 위험이 큰 우리나라 일자리는 327만개로 전체 일자리의 13.1%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업별로 제조업과 건설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이 주된 타깃입니다. 특히 제조업 일자리의 경우 고용 비중 감소와 고임금 일자리마저 줄어드는 중대 위기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경고한 '힘의 역설'처럼, AI 기술은 힘인 동시에 일자리 위험으로도 지목되고 있는 겁니다. 즉, AI가 만들어내는 신산업과 새로운 직무가 예상되지만 창출 규모가 사라진 일자리를 보완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AI 대전환 시대, 새로운 일자리의 탄생까지 청년층이 겪을 '지옥 같은 고용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 6일 현대차그룹은 NVIDIA 옴니버스 기술을 활용해 가상현실 속 실제 공장 설비와 연동한 디지털 트윈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기아 제공)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는 공식석상 때마다 AI 성장 돌파구를 내밀고 있으나 사실상 AI 혁신만 공언할 뿐, 당장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 고용률은 18개월 연속 하락세. 제조업 고용 비중이 급격히 떨어진 데다, AI 도입은 오히려 일자리 감소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정책 간 괴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조차 AI 도입 이후 하이테크 분야 일자리가 급감하는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부터 미국 청년 고용률이 계속 하락하면서 캘리포니아는 감소를 주도하는 지역으로 낙인된 상황입니다.
물론 구윤철 부총리가 강조한 APEC 차원의 AI 인재 양성과 규제 완화, 협력 강화는 긍정적 신호로 읽힙니다. 2035년부터 인구가 감소하는 저성장 시대에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니까요. 생산성 증대가 곧바로 고용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국가 정책은 '일자리의 양과 질'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AI 고급 인력, 석·박사급 수요는 어떨까요. 한국의 교육 및 인력 양성 정책은 여전히 한계에 직면한 데다, 민관 협력 모델 개발도 미흡한 실정이죠. 미국과 중국은 민간, 국가가 각각 주도해 AI 인력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는 격차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세종시 어진동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세종청년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욱이 AI 대학원과 SW중심대학의 이원화, 해외 우수 인재 유치의 어려움 등은 단기간에 고급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입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를 보면, 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8곳은 AI 경영활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AI 투자비용도 부담된다는 응답이 73.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2만1000명에 불과한 AI 인재는 중국·인도·미국에 비해 턱없이 적고 해외 인재 유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AI는 국가 경제의 성장 엔진임이 분명하지만 청년 고용 위기와 노동시장 변화라는 현실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이테크 산업마저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AI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론은 고용 체감과 동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력 양성, 정책 개선, 민관 협력, 국제 협력, 사회 안전망 강화 등 다각도의 전략이 복합적으로 실행될 때 AI 시대의 진정한 '성장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걸 명심해야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히 기술 도입만이 아닌 '기술과 인간의 새로운 공존'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