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몇 년이 지나도, 아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날이 있다. 내게는 2014년 4월16일이 그런 날이었다. 며칠이고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백 명의 승객이 구조되지 못하고 물속에 수장되었던 그런 날들이었다. 구조는커녕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국가를 보았다. 국가는 은폐와 조작에는 능했다.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탄압하는 일에 골몰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4년 12월3일도 그런 날이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차를 타고 국회로 달려갔다. 운전대를 잡은 이웃에 사는 송 신부는 “우리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우리가 죽자”고 했다. 그날 밤 우리는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국회로 달려갔다. 우리만이 아니었다. 그 밤중에 어디서 달려왔는지 국회 앞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헬기가 날아오고, 군용차들이 국회 문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비무장 상태로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았다. 국회의장과 의원들이 담을 넘어서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국회 본청 안으로 진입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44년 전 광주의 거리를, 그리고 새벽에 도청을 진압하는 계엄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계엄군은 광주와 달랐고, 국회는 계엄을 해제했다. 아무도 죽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비상계엄이 윤석열이 말하는 것처럼 경고용이거나 한 번 해본 짓으로 끝날 수는 없다. 내란 세력들은 끔찍한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등 정치인을 비롯한 인사들을 체포해서 비밀 장소에 감금하고, 고문하고, 의문사로 위장해서 죽이려는 계획도 드러났다. 북한 평양 상공에 무인기 공격을 해서 도발을 유도하고, 그걸 핑계로 계엄을 선포하려던 짓도 꾸몄다. 박근혜 국정농단 때 최순실보다 더 질이 안 좋은 김건희란 인물의 국정 개입과 ‘왕놀이’도 알려졌다. 대부분의 소문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그때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다면, 우리는 다시 군부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가지만 진상조사와 수사,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3일 계엄군이 비상계엄령이 발표된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때는 ‘촛불 광장’이었다면, 이번에는 ‘빛의 광장’이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민 정신이 빛났다. 그런 힘으로 지난 4월4일,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대통령실만이 무덤 같았던 게 아니라 윤석열 치하 2년여 동안 모든 게 깨지고 망가져서 나라 전체가 폐허였다.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
그럼, 12·3 비상계엄 1년인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직도 중국 간첩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혐오 세력의 힘은 잦아들 줄 모른다. 내란 세력들은 제대로 된 반성도 없다. 내란범을 단죄할 지귀연 부장판사는 범죄자들을 앞에 놓고 내란과 외환을 희화화하고 있다. 내란 세력의 범위는 넓고도 깊음을 특검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확인한다.
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같이 만들어갈 민주주의는 존중과 평등의 민주주의여야 한다.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아닌 다양성으로 존중되는 사회, 불평등과 격차는 줄이고, 서로 돌보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그런 길이 확고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내란 세력을 척결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내란의 강을 건너는 중이다.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