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생 제주항공 조종사 노조위원장 “참사 수습과 근무환경 개선에 최선”

부기장 출신 임정훈 신임 노조위원장 인터뷰
“사조위의 공청회 등 NTSB 모델과 맞지 않아”
“조종사 이탈은 손실…처우 개선으로 막을 것”
“매년 두 차례 훈련…숙련 조종사들 믿어 달라”

입력 : 2025-12-03 오후 3:15:43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를 수습하는 일이 하나의 소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지만, 저 역시 조종사이자 희생된 이들의 동료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야 할 그 일은 ‘참사 수습’이었고 이를 잘 해내려면 노조 집행부에 출마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참사가 보름 뒤면 1주기를 맞는 가운데, 동료를 잃은 임정훈(38) 제주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8기 위원장은 당선 소감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사고 원인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진상규명 감시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임정훈 제주항공 조종사 노조위원장이 1일 서울 강서구 노조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임 위원장은 노조 설립(2008년 2월) 17년 만이자 국내 항공사 조종사 노조를 통틀어 최초의 80년대생 부기장 출신 위원장입니다. 지난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공청회 저지 집회에 참가한 뒤 서울 강서구 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참사 수습과 제주항공 조종사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마 이유로 ‘참사 수습’을 들었는데.
 
“참사로 인해 조종사 노조에서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사고 수습과 조합원의 사기 회복, 유가족 지원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그 일을 저희 노조에서 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진상규명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감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이 실효성 있게 마련되기 위해서도 노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무 환경 개선도 중요한 목표로 꼽았는데.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조종사들이 콕핏(조종간)에서 먹는 식사의 질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안전 운항의 출발점입니다. 또한 밤낮이 바뀌고 시차가 큰 환경에서 근무하는 특수성을 고려한 스케줄 조정도 현재보다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조위 공청회 저지 집회에 다녀온 이유는?
 
“공청회를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국제 기준상 공청회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사조위는 공청회 방식이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모델을 따른다고 하지만, 핵심 절차인 ‘사전회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전회의에서는 사고기 제작사·엔진 제작사·항공사·공항관리국 등이 협의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중 앞에서 공청회를 여는 건 조종사에게 불리한 여론을 만드는 것 외엔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또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로컬라이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토부) 산하에 있는 사조위가 공청회에서 공개하는 자료 역시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지난 7월 사조위가 엔진 관련 내용을 중간 발표 형태로 공개했는데, 이는 조종사 과실 프레임을 만들려는 시도로 상급 단체인 대한민국 조종사 노조 연맹과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조위가 국토부로부터 독립된 뒤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는 취지의 저지 집회를 지지한 것입니다.”
 
2016년 미국에서 비행 훈련을 받을 때의 모습. (사진=임정훈 제공)
 
-이력이 남다른 느낌인데.
 
“건국대 경영학과에서 2학년까지 다니다가 제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로 편입해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습니다. 군복무를 마친 뒤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기회의 땅’ 미국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졌던 조종사의 꿈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미국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한국으로 돌아와 2017년 제주항공에 입사했습니다. 특히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저비용항공사(LCC)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민간 조종사에게 많은 기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전공과는 다른 업을 선택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2025년 임금교섭’을 마무리한 소회는?
 
“조합원들의 주요 요구가 일정 부분 충족됐습니다. 상대적으로 타 LCC 대비 부족했던 항목을 보완한 점도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체결된 단체협상이 사실상 멈춰 있기는 하나, 현 단협을 유지하기만 해도 타사와 비교해 처우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이 조건들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노조의 핵심 역할입니다. 또한 조합원 600명이 넘는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대의원회 운영을 연 1회에서 분기 1회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올해 50여명의 조종사가 퇴사했는데.
 
“복합적이지만 원인은 부기장의 기장 승급 지연과 연봉 인상률 등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부기장 근무 4~5년이면 기장 승급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8년 이상 걸립니다. 기단 확장성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 때문에 조종사 개인의 성장·커리어에 대한 경로가 좁아진 것이죠. 다만 올해 임협 이후 이직을 철회한 사례도 있습니다. 임금뿐 아니라 ‘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다’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 위원장이 조종간에서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임정훈 제공)
 
-8기 집행부의 최우선 과제는?
 
“첫째는 참사의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하늘길을 더 안전해지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둘째는 조종사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입니다. 기내식과 현지 체류 환경 등이 개선돼야 숙련된 조종사 이탈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필수공익사업장에서 항공운수업을 제외시키는 데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20년 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있었을 때는 한 항공사의 쟁의행위가 국가 교통망을 마비시키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국내 항공사만 12곳에 이릅니다. 때문에 시대 상황에 맞게 필공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조종사 노조는 귀족노조’라는 시각이 있는데. 
 
“오해입니다. 한국 조종사 임금은 주변 국가 대비 낮은 편인 데다 IT업계와 비교해 더 낮은 수준입니다. 처우가 낮으니 대만·일본·중동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조종사는 ‘대체가 쉬운 인력’이 아닙니다. 실제 노선에 투입되기까지 약 8개월 이상의 훈련 기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저희는 특혜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처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참사 이후 탑승을 불안해하는 고객도 있는데.
 
“저희는 매년 최소 두 차례 이상 비정상 상황 훈련을 받습니다. 가령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셧다운 등에 대한 비상 대응을 훈련합니다. 안전을 놓고는 그 어떤 타협도 없습니다. 회사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조종사는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직업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사람들로서, 그 누구보다 가장 안전한 구조 속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도 저희 조종사들입니다. 조종사의 가장 높은 가치는 ‘안전’입니다. 승객이 제주항공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가 ‘안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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