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최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회장 개인의 장기 재임’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치금융 논란을 의식해 정부가 직접 개입을 자제해 온 결과, 금융지주 내부에 소수 인사들이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하는 '이너서클'이 형성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내부 출신도 마찬가지이니다. 은행장을 맡고, 회장으로 복귀하는 식으로 10년, 20년씩 권력이 순환되는 구조를 문제 삼았습니다. 단순한 임기 문제가 아니라, 견제받지 않는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너서클은 쉽게 말해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로 이사회가 채워지는 구조를 뜻합니다. 금융감독원의 이찬진 원장이 이를 ‘참호’ 구조라고 표현했는데요. 회장이 재임 기간 동안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본인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회장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CEO 승계, 내부통제 문제, 연임 판단까지 모두 내부 논리로 굳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그동안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여러 차례 손질해 왔지만,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동안의 모범규준은 절차적 요건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외이사 후보 검증 절차를 명문화하거나, CEO 승계 시점을 앞당기는 식입니다. 하지만 핵심인 ‘누가 이사회에 앉느냐’, 즉 사람의 문제까지는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형식은 갖췄지만, 이사회 구성 자체가 회장 친화적으로 굳어 있으면 실질적인 견제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번 TF는 단순한 가이드라인 보완을 넘어 이사회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높이겠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사외이사 주주추천권 확대입니다. 현재 일부 금융지주만 운영하는 주주추천권을 전 금융지주로 확대하고, 회장 영향력이 닿지 않는 추천 경로를 늘리겠다는 구상입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관련 대통령 지적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 TF를 가동하기로 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모습. (사진=뉴시스)
앞으로 남아 있는 금융지주 회장 인선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우리금융지주 회장 인선이 막바지 단계에 있습니다. 임종룡 현 회장과 다른 후보 3명이 압축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금융은 경영 승계 작업 시작 시점으로부터 2개월이 지난 이달 말쯤 최종 후보를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관행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금융권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올 들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행장과 회장 재임 기간을 포함해 1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한 인사들입니다.
이 대통령은 애초 이 둘을 포함해 4대 금융지주 회장은 물론 지방 금융지주 회장까지 모두 개혁 개상으로 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손 놓고 있는 사이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이 모두 그대로 연임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공개 발언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왼쪽부터)과 조용병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만간 차기 회장 인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우리금융이 가장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대통령 지적에 따라 내부 출신을 대안으로 찾기에는 '이너서클'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우리금융 차기 회장 압축 후보군은 임종룡 현 회장과 정진완 우리은행장을 포함해 외부 후보 2명 등 총 4명입니다. 외부 후보 중 민간 금융사에서 CEO 출신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차기 회장 최우선 순위로 꼽혀온 관료 출신 회장 연임과 내부 행장 출신의 회장 승계 구도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KB금융, NH농협금융 등은 회장 임기가 1~2년 남아 있습니다. 지배구조 TF 논의 결과가 가시화되면, 지금처럼 외부 후보는 형식적으로만 두고 현직 회장이 연임하는 구조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과 주주, 그리고 당국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향후 인선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