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 초 방중을 앞두고 북한이 ‘연말 도발'을 강행했습니다. 북한은 이번 도발을 통해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했는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미국·중국을 향해 협상 국면을 염두에 둔 '다중 포석'을 깔며 주도권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며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핵잠 공개' 이은 군사 행보…미국에 '핵보유국' 인정 압박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현지시간)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중요군수공업기업소를 방문하시고 4·4분기 미사일 및 포탄 생산 실태를 료해(파악)하시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제9차 당 대회에서 새롭게 제시하는 현대화 및 생산 계획 목표를 무조건 접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북한은 우리 정부의 핵잠수함 추진을 비판하며 무기체계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북한은 25일 김 위원장이 8700톤(t)급 '핵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 건조 사업 장소를 시찰한 모습을 공개했는데요. 24일엔 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고공 장거리 반항공(대공)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습니다. 북한이 핵잠수함과 방공 전력을 동시에 부각한 것은 대미 억제력과 한반도 주변 방어 능력을 함께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북한의 연이은 무기체계 과시는 내년 초 이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됩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중 정상외교 일정과 맞물려 북한의 군사 행보가 외교적 메시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도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국이 미국의 전략자산 의존을 넘어 독자적 군사 역량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북한이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핵잠수함 건조 사실을 공개한 것도 중국을 향해 '핵보유국 북한'이라는 현실을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겁니다.
북한은 북·미 담판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미국을 향해서도 핵보유국 인정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을출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세 변화에 따른 전술적 선택이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목표는 조건 없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으로부터 정상국가로 대우받는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임 교수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핵과 재래식 전력의 동시 고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정평군 지방공업공장, 종합봉사소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5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협상용 사전 작업…한국, 페이스메이커 가능"
북한은 외부 정세와 무관하게 설정한 목표에 따라 일관되게 나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 4월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데요. 이번 무기체계 과시를 통해 한국·미국·중국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다중 포석'으로 읽힙니다. 앞으로의 정상외교 국면을 겨냥한 협상용 사전 작업이라는 겁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북미유럽연구부 교수도 "내년 4월 미·중 정상외교 이후 전개될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여전히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역시 군사력 증강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민 교수는 내년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따라 한국이 페이스 메이커(보조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북·미 간 직접 대화가 본격화 되기 전, 한국이 중국·일본과의 외교 채널을 활용해 협상의 흐름과 속도를 조율하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러면서 "한국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통해 대화의 판을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여건 조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대화는 남북 관계 복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양 교수는 "북·미 간 대화 재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요의 문제"라며 "주도권을 염두에 둔 계산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내년 한반도 정세 전망과 관련해선 "가장 중요한 변수는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로 북·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느냐 여부"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북·미 정상회담 역시 핵심 변수"라며 "북한의 몸값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