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농협중앙회장의 '보은 인사'를 차단하기 위해 법제화에 나선 배경 중 하나는 농협금융지주 등에 대한 중앙회의 인사·경영 개입이 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회장 교체 때마다 '회장 라인'이 금융계열 최고경영자(CEO) 자리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데요. 전문성이 떨어지는 중앙회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내부통제 부실, 금융사 손실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금융계열 CEO 상당수 '중앙회 출신'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를 비롯해 농협은행과 농협손해보험, 농협생명보험 등 금융 계열사 CEO 자리에는 이른바 '강호동 라인'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 이력을 살펴보면 경남 합천율곡농협 조합장을 지낸 강호동 농협중앙회장과 같은 영남 지역 출신인 동시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농협은행장은 농협금융의 핵심 자리인 만큼 중앙회장 교체 때마다 사표 제출 1순위였습니다. 강태영 농협은행장의 경우 경남 진주 출신으로 강 회장과 동향이며,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전임 은행장이 중앙회장 선거 기간에 경기도 출신 후보를 지원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다"며 "경쟁자인 강 회장이 당선되자마자 은행장이 최우선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고 전했습니다.
농협금융은 지난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 사업 분리)' 이후 중앙회으로부터 분리돼 금융지주사로 출범했고, 산하 금융계열사에 대한 독립적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농협금융 지분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 및 금융계열사 인사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대주주가 인사·경영 등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은 금융지주사법 45조의4 '주요 출자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위반에 해당합니다.
강 회장 취임 이후 농협금융 보험계열사 CEO도 줄줄이 교체돼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강 회장 체제에서 선임된 보험계열사 CEO 이력도 농협은행장과 판박이입니다. 송춘수 농협손해보험 대표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고, 박병희 농협생명 대표는 대구 출신으로 1994년 농협중앙회에 들어왔습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계열사 CEO 인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경에는 비상임이사가 있습니다. 농협금융 및 계열사 CEO를 선임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는 강 회장이 추천한 박흥식 비상임이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는 박 이사를 통해 금융계열사 CEO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강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김병화 사외이사는 농협금융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과거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과 인연을 키워드로 강 회장과 김 사외이사는 같은 라인으로 묶여집니다. 농협의 한 인사는 "중앙회장 취임 이후 CEO들로부터 일괄적으로 사표 제출을 요구하고 경영 실적 등에 상관없이 교체한 것은 결국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의도"라고 했습니다.
농협금융지주에 대한 농협중앙회장의 인사 개입이 심각하면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이 농협법 개정 등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강 회장이 선서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비상임이사 앞세워 전방위 인사 개입
농협금융 계열사 이사회도 '강호동 라인'이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농협금융의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은 이사회 구성원 8명 가운데 사외이사가 김홍기·장인환·차경욱·함유근 등 4명입니다. 김광수·이신형 등 비상임이사 2명은 각각 농협조합장과 농협은행 출신입니다. 시중은행 대표격인 KB국민은행 이사회를 보면 구성원 8명 중 사외이사가 5명(과반 이상)에 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 비율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농협금융의 주요 계열사 이사회는 사외이사 수를 최소한으로 맞추면서, 남은 자리에 농협조합장 출신 인사들을 비상임이사로 내려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농협금융 및 금융계열 이사회에 농협 출신 인사들이 자리 잡으면서 인사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4년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농협중앙회는 중앙회 출신 인사를 추천한 반면 농협금융은 해당 인사의 금융·증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금융당국이 중재에 나서기까지 CEO 인선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금융감독원은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했었습니다. 같은 해 5월 금감원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하면서 농협중앙회의 과도한 인사권 장악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례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이 금융지주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금감원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회장과 사외이사, 감사위원, 자회사 CEO 등 후보자를 추천하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에 비상임이사가 그대로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은 "농업 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인물이 농협을 운영하는 게 맞다"며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금감원에서도 경영승계 과정에서 지배구조법상 절차적 문제만 들여다보겠다고 물러선 바 있습니다.
농식품부가 농협 조직에 대한 범정부 합동 감사 체계를 가동할 예정인 가운데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감사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농협중앙회 산하에 농협금융과 금융계열사가 포함돼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합류가 필요합니다. 합동 감사 체계가 마련되는 대로 금감원은 농협금융에 대한 검사를 시작할 전망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농식품부 등과 소통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중앙회 출신 비상임이사를 금융지주 및 금융계열사에 내려보내 인사·경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