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가 오는 5월 9일로 예정된 가운데 서울 아파트 시장에 매물이 빠르게 쌓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연일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정상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관망하던 집주인들의 매도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매물 증가와 함께 일부 단지에서는 직전 신고가 대비 수억원 낮은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는 등 하락 거래도 확산하는 양상입니다.
11일 부동산 정보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는 6만1755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다주택자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 글을 게시하기 시작한 1월 23일(5만6219건) 대비 보름 만에 9.8% 가량 증가했습니다. 자치구별로는 25개 자치구 중 강북·금천·구로·양천·성북·동대문구 등 6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매물이 늘었습니다.
한강변 핵심 지역에서 시작된 매물 확대 흐름은 노원·도봉·은평 등 외곽 지역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매수세가 유지되던 지역에서도 신규 매물 유입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특히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를 포함한 동남권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성동구는 지난달 23일 대비 매물이 25.6%, 송파구는 20.7%가 늘었습니다. 서초·강남 역시 11.5, 13.9%로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그동안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로 인해 세입자가 있는 주택은 사실상 거래가 쉽지 않았지만, 실거주 요건을 일정 기간 유예해 주기로 하면서 매매가 가능해진 물건이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토지거래허가제에 묶여 유동화되지 못했던 이른바 ‘세 낀 매물’이 거래 가능한 상태로 전환되면서 매물 증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립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급매와 양도소득세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출구 열리자 움직인 다주택자…물량 늘고 호가 낮아졌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압구정현대아파트 1·2차 전용 161㎡는 최근 호가가 82억원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지난달 실거래가(89억원)와 비교하면 7억원가량 낮은 금액입니다. 일부 대형 평형에서는 지난해 말 최고가 대비 수십억원 낮춘 매물도 등장했습니다. 재건축 기대감으로 급등했던 단지에서 가격 조정이 가시화되는 셈입니다.
강북권은 상대적으로 조정 폭이 제한적이지만, 회전율이 낮은 중대형 면적부터 호가를 낮추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일부 단지에서는 최근 실거래가보다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 낮춘 매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중대형과 국민평형 간 가격 격차가 축소되는 현상도 관찰됩니다.
매물 확대와 함께 최근 몇 년 새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던 강남권에서도 하락 거래도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초구 서초동아타워 전용 178㎡가 직전 최고가보다 5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됐고, 송파구 파인타운8단지 전용 59㎡ 역시 지난달 말 신고가인 지난해 12월 매매가보다 3억원가량 낮은 수준에 손바뀜이 이뤄졌습니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자이 개포 전용84㎡는 층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난달 한 달 전보다 1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최근 1~2년간 상승 폭이 컸던 고가 아파트에서도 조정 압력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거래량은 뚜렷한 감소세입니다.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전월 대비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수자들 사이에서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가 임박할수록 더 낮은 급매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매수 결정을 미루는 분위기가 강한 것인데요. 가격이 일부 조정됐음에도 여전히 절대 수준이 높다는 인식도 거래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수급 지표 역시 하향 흐름을 보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첫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1.9로 2주 연속 하락하며 21주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강남3구가 포함된 동남권은 서울 평균보다 3.5포인트 낮은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아직 기준선(100)을 웃돌고 있으나 매도 우위가 완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들이 세제 혜택 종료 전에 매도 여부를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대규모 물량 출회나 급격한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중과 유예 종료가 확정된 만큼 혜택을 놓치지 않으려는 다주택자들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다만 시장을 뒤흔들 만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거나 가격을 크게 낮춰 던지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시세 수준에서 매물을 내놓고, 거래가 되지 않으면 점진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흐름에 가깝다”며 “5월로 갈수록 일부 추가 조정은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은 ‘정리’ 차원의 매도라고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조치가 규제 강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거래 퇴로를 열어준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다”며 “전세 기간이 많이 남은 매물은 오히려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만기가 임박한 물건은 급매로 조정되는 식의 차별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이다. 이어 “전세를 끼고 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도 있어 핵심 지역은 가격 방어력이 유지될 수 있고, 외곽이나 전세 기간이 짧은 매물 위주로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